정부 출연연구기관과 대학은 막대한 연구 자원을 보유한 ‘잠자는 거인’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국내 대학과 출연연구기관은 정부 연구개발(R&D) 비용의 22%, 연구인력의 31.3%를 차지하고 있다. 공공연구기관이 보유한 기술만 24만8247건에 이른다. 슈퍼컴퓨터부터 각종 계측 시험장비까지 연구소별로 특화된 장비와 전문인력,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최근 2~3년 새 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공공연구기관이 산업현장에서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지원에 발벗고 나서면서 연구소 문을 두드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지난해 산하 25개 출연연구기관이 지원한 기업은 1만4431개에 이른다. 이는 전년과 비교해 30%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기업과의 교류가 밀접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지난해 3439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2925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1397개 기업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거나 기술을 이전했다. 이들 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중소기업 가운데 4044개는 연구소의 ‘가족 기업’이 되기도 하고 공동기술지주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집중 관리되고 있다.

공공연구기관이 이전하는 기술은 해마다 7000건이 넘지만 대부분 실제 상품으로 나오기까지 기업에 따라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이 직접 투자해 설립한 ‘연구소 기업’은 비교적 손에 잡히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국내 연구소 기업 118개가 지난해 벌어들인 매출은 2365억원에 이른다. 첫 연구소 기업이 설립된 2006년 이후 연평균 92.8% 성장한 수치다. 연구소 기업이 고용한 인원만 850명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힘을 보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명동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경인지원팀장은 “영세한 중소기업이 별도로 연구시설을 짓고 전문가를 고용해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해외 수출상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며 “연구소와 기업이 손을 맞잡고 기술 개발에 나서는 사례는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