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도 모르는 공공구매 시장의 '가짜 치마사장'
“사장님 회사의 자본금이 얼마지요?”서울 중랑구에 있는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업체 G사. 여성기업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 회사를 찾은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 소속 평가위원들이 회사 대표에게 질문했다. 40대 여성 대표이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자본금…, 그게 뭐죠?”라고 되물었다. 이 회사는 여성기업 심사에서 탈락했다. ‘진짜’ 사장은 따로 있었다. 사장이 처남댁에게 ‘벼락치기’ 공부를 시켜 여성기업 확인서를 받으려 하다 적발된 것이다.

늘어나는 ‘위장 여성기업’

자본금도 모르는 공공구매 시장의 '가짜 치마사장'
여성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G사처럼 일명 ‘치마사장’을 내세우다 적발되는 중소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공공기관이 물품이나 용역을 구매할 때 일정 부분을 여성기업에 할당하는 것을 노린 것이다.

여성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여성기업 확인서를 받은 업체는 4522곳이다. 확인서를 받는 데 실패한 기업도 932곳이나 됐다. 여성기업 인증에 실패한 기업은 지난해 같은 기간(761곳)보다 22% 늘었다. 신청 기업의 17%가 탈락한 것이다. 탈락 이유를 보면 ‘대표자의 업무미숙’이 322건(34.5%)으로 가장 많았다. 이외에 ‘서류부족 및 미제출’ 301건(32.3%), ‘자진 취소’ 148건(15.9%), ‘실질적인 여성기업 확인 불가’ 65건(7.0%) 등이었다.

여경협 관계자는 “대형 공사와 조달이 많은 연초에 MRO업종 등에서 이런 위장회사가 많이 적발된다”고 말했다. 또 신청 횟수에 제한이 없는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끈질기게 재신청하는 위장업체도 많다고 전했다. ‘재수, 삼수는 기본’이고, 교묘한 눈속임으로 심사를 통과한 회사도 많은 것으로 여경협은 보고 있다.

여성기업 확인을 위해 현장 실사를 나갔던 한 전문위원은 “앳된 얼굴의 여대생으로 보이는 한 사장은 업무에 대한 질문을 하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며 “칠순 노모를 사장실 책상 앞에 앉혀놓은 업체도 있었다”고 전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여성기업 확인을 받은 한 회사는 직원이 투서해 여성기업 확인이 취소되는 일도 벌어졌다.

공공구매 혜택 노린 꼼수

가짜 사장을 내세워서라도 여성기업 확인을 받으려는 이유는 공공구매 시장에서 주어지는 혜택 때문이다. 정부는 작년 1월 ‘여성기업 공공구매제’를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로, 국내 745개 공공기관이 물품이나 용역을 구매할 때 총액의 5%, 공사발주액의 3%를 여성기업에 할당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노리고 ‘치마사장’을 내세우는 것이다. 여성기업 확인을 받으면 공공기관 입찰에서 0.5점의 가산점을 받는다. 여경협 관계자는 “0.5점은 공공기관 입찰의 당락을 좌우할 만큼 큰 점수”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제품 구매액은 111조5000억원이었는데 이 중 4.9%인 5조4900억원이 여성기업에 돌아갔다. 올해 여성기업 제품 구매목표는 5조7300억원이다. 여성기업으로 공공기관 조달에 참여하려면 중소기업청에 자료를 제출하고, 여경협으로부터 ‘여성기업 확인 판정’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장 실사가 이뤄지며 많은 기업이 실사에서 탈락한다.

중소기업청은 ‘위장 치마사장’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연내 제도를 보완키로 했다. 위장 여성기업이 발각되면 벌금을 물리고, 신청이 두 차례 반려된 기업은 3개월 내 재신청을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여성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인 여성기업 정의를 ‘여성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으로 바꿀 예정이다.

■ 여성기업 공공구매

공공기관이 물품이나 용역을 구매할 때 전체 액수의 5% 이상, 공사 발주 때는 3% 이상 해당하는 일감을 반드시 여성기업에 할당하도록 한 제도. 지난해 1월 시행.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