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대란 >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수도권 전세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전셋값이 78개월째 상승하면서 전세 재계약 때 전셋값이 급등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한경DB
< 전세대란 >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수도권 전세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전셋값이 78개월째 상승하면서 전세 재계약 때 전셋값이 급등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한경DB
광남초·중·고교 등을 배정받을 수 있어 서울 강북권에서 학군 선호도가 높은 광진구 광장동 ‘현대8단지’ 전용 84㎡는 지난달부터 학군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 호가가 5억5000만원까지 올랐다. 4억5000만원이었던 올초에 비해 1억원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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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시장이 불안하다. 전셋값이 78개월째 상승 행진을 이어가면서 전세계약을 새로 맺어야 하는 세입자 상당수는 서울 강북권 중소형 아파트도 보증금 1억~2억원을 추가로 올려줘야 할 상황이다. 저금리 영향으로 전세보증금 운용수익이 줄어든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반면 세입자는 여전히 전세를 선호하고 있어서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지역에서도 순수 전세 물건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전세 수요·공급 불일치

전셋값 급등에도 불구하고 세입자들은 여전히 전세를 선호한다는 게 중개업소 설명이다. 월세보다 금융회사에서 빌린 전세자금 대출 이자가 더 싸기 때문이다. 다음달 전세계약 만료를 앞둔 서울 ‘길음뉴타운 6단지 래미안’ 세입자 박모씨(39)는 ‘4억원인 기존 전세보증금은 올리지 않는 대신 월세 50만원을 내라’는 집주인과 상의해 월세 없이 보증금을 5억원으로 올려주기로 했다. 박씨는 “1억원을 대출받으면 연간 이자가 350만원인 반면 월세는 연간 600만원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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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집주인과 협상이 잘된 경우다. 전세를 반(半)전세로 돌리는 집 소유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서다. 서울 미아뉴타운에선 단지별로 순수 전세 물건은 한두 개에 불과하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저금리 여파로 전세 수요는 늘어난 반면 공급은 줄면서 전세 수급의 미스매칭(불일치)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줄어드는 전세 물건

서울 주요지역 대단지에서도 전세 물건이 없어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란 말이 나온다. 강남구 삼성동 ‘삼성 힐스테이트’ 전용 84㎡는 최근 9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서를 썼다. 연초와 비교해 1억원 가까이 올랐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와 ‘반포 자이’ 등에선 이미 월세 거래량이 전세 거래량을 넘어섰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래미안 퍼스티지’ 월세 거래량은 61건으로 전세 거래량(29건)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달 래미안 퍼스티지 전용 84㎡ 전셋값은 13억원으로 9억원 선이던 2013년에 비해 4억원 올랐다. 순수 전세 매물은 1~2건인 반면 보증금 5억원에 월세 250만원 혹은 보증금 8억원에 월세 150만원인 월세 매물은 10여건을 웃돈다.

양천구 목동 5단지 전용 95㎡ 전세도 보증금이 6억5000만원에 달하지만 물건이 없다. 목동3단지 스피드공인 관계자는 “전세가 없다 보니 월세 100만원 이하 물건은 거래가 어렵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전셋값 78개월째 상승 중

이번 전세 랠리는 2009년 3월에 시작해 78개월간 지속되고 있다. 이전 최장기간 상승 랠리는 2005년 2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45개월간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전세가격이 20개월가량 오르다가도 다시 내리는 흐름이 나타났다. 일시적인 주택 수요가 공급을 웃돌며 전셋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전셋값 상승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주택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저금리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 구입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약해진 것도 전세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전세 주택에서 자가 보유로 전환하는 비율은 2005년 53%, 2008년 38.7%, 2012년 23.2%로 줄어들고 있다. 과거 전세는 내집 마련에 앞서 과도기적 주거 형태였지만 최근엔 전세로 계속 살거나 월세 등 다른 형태의 임대주택으로 옮겨가는 사례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김진수/김보형/홍선표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