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금융권 오픈 플랫폼, 핀테크 비상 돕는다
올초 정부가 금융과 정보기술(IT)의 융합, 즉 핀테크 육성을 핵심개혁과제로 선정해 추진한 이후 핀테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IT를 금융 업무의 도구 정도로 인식했던 금융회사들은 핀테크 전담조직을 설립하고 유망한 핀테크 기업의 발굴·제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핀테크 육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규제를 개선함으로써 시장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해 왔다.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 보안프로그램 설치 의무 등 각종 사전규제를 철폐했으며 창구 방문 없는 계좌 개설 허용 등 오프라인 시대의 낡은 규제도 대폭 정비했다. 인터넷전문은행, 크라우드펀딩 등 해외와 같은 혁신적 핀테크 서비스가 출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도 추진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꽃이 아무리 예뻐도 벌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제도와 규제개선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새로운 핀테크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금융서비스 프로그램 소스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핀테크 기업들은 이런 프로그램 소스를 구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핀테크 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핀테크 전용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우선 전 세계 최초로 핀테크 기업들에 금융회사 내부의 금융서비스와 데이터를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하는 ‘금융권 공동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이다. API란 특별한 프로그래밍 기술 없이도 원하는 앱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된 프로그램 명령어 덩어리를 말한다. 기존에는 핀테크 기업이 도자기를 빚고 무늬까지 그려서 상품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금융회사가 제공한 도자기에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개발된 핀테크 서비스가 금융전산망과 연동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해 볼 수 있는 ‘테스트 베드’를 구축, 개발된 서비스가 조기에 상용화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것이다. 이는 한국이 핀테크 분야 후발국에서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다만 이런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핀테크 기업들에 필요한 금융 서비스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곳은 금융회사이기 때문이다. 이미 17개 시중은행과 다수의 증권회사가 핀테크 전용 인프라 구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과거와 달리 핀테크 기업을 시장을 잠식하는 경쟁자가 아닌 시장의 파이를 함께 키워 나가는 동반자로 인식하는 금융회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물류 비용을 낮추고 운송 시간을 단축시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것처럼 개방형 API와 테스트 베드는 서비스 개발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국내 핀테크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 주춧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핀테크 기업들은 새롭고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 개발로 화답해야 한다. 핀테크산업은 ‘선도자의 이득’이 큰 네트워크산업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핀테크 기업에도 유리하다. 또 핀테크 기업들이 지급결제서비스를 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국민들이 기존의 금융 서비스와 다르다고 체감할 수 있는 ‘킬러 서비스(killer service)’가 출현할 수 있다.

핀테크산업에 대한 관심이 한낱 유행과 거품에 그치지 않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정부, 금융회사, 핀테크 기업 모두의 노력과 협력이 절실하다. 혁신적 핀테크 서비스를 무기로 국내 금융회사가 해외에 진출하고, 국내 핀테크 기업이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정찬우 <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