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작가 이불 씨의 ‘무제’.
설치작가 이불 씨의 ‘무제’.
기이한 거울 소품의 방이다. 새하얀 방 벽면에 조각난 거울이 액자 모양으로 걸려 있다. 크고 작은 파편마다 반사하는 상이 다르다. 거울 조각에 비친 주변 형상은 어지럽게 재구성돼 낯선 느낌을 준다. 천장에는 사슬로 갓을 두른 전등이 10개 남짓 달려 있다. 전등 밑에서 위를 올려다봤을 때 보이는 것은 관객 자신의 얼굴과 색색의 기호 조각이다. 전구가 있을 자리에 거울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전등 안쪽에 놓인 기호 조각은 양면 거울에 반사돼 무한히 반복된다.

설치예술 작가 이불(51)의 개인전 전시실 모습이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26일 개막한 이번 전시에는 그의 신작 조각과 벽면설치, 드로잉 등 32점이 나왔다.

이불은 세계적인 작가다.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김세중 조각상 등을 받았다. 2012년부터 열리고 있는 개인순회전은 일본 룩셈부르크 스페인을 거쳐 캐나다 밴쿠버 갤러리에서 10월 개막한다.

이불은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알몸인 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고통을 표현한 1989년 퍼포먼스 ‘낙태’를 비롯해 생선이 썩는 모습을 그대로 전시한 ‘화엄’, 인간과 로봇 몸을 조합한 ‘사이보그’ 연작 등이 대표작이다. 무채색을 이용해 현대인의 고통과 불안을 주로 다루던 그는 2005년 시작한 ‘나의 거대서사’ 연작을 통해 이상과 현실, 영원성 등 보다 큰 주제를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는 연작 중 영원을 뜻하는 ‘인피니티’의 연장이다. 거울로 이미지를 반복시켜 불멸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표현했다. 이전부터 천착해온 주제지만 새로운 면이 있다. 큰 공간 전체를 쓰는 대신 소규모 작품 여러 개를 엮어 전시했다. 벽면과 바닥을 가득 채웠던 기존의 대형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천장에 걸린 조각으로 대체됐다. 전등과 전선, 끈 등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한 조각이다.

색이 화려한 구슬조각인 비즈와 아크릴 조각을 이용한 것도 큰 특징이다. 26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색을 쓴 것은 20여년 만에 처음”이라며 “규모가 작아진 작품으로 ‘거대서사’라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과감한 색으로 작품의 존재감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주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자 소규모 전시를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거울은 인간이 자신을 대면하고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수단이다. 작가는 “관객들이 스스로를 비춘 끝없는 반사상을 보며 자신이 평소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25일까지. (02)734-9467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