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증시 판도 바꾼다②] 백광제 교보證 "통합 삼성물산 5개월 전 예견…다음 타자 삼성SDI"
국내 증시에서 지배구조 관련주(株)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2013년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국내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으로 인해 지배구조 관련株 움직임도 눈에 띄게 커졌다. 최근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이슈를 비롯해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 등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순환출자 구조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부 기업의 지배구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불러오는 주범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한경닷컴]은 국내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4명(김동양·백광제·오진원·정대로)의 기업분석가(애널리스트)를 만나 지주회사를 포함한 지배구조 관련주의 향후 전망과 투자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1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제일모직, 기대보다 빠른 재편'이라는 제목의 두 장 짜리 보고서가 등장했다.

제일모직 상장(2014. 12.18일)을 앞두고 나온 이 기업분석 보고서에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정점은 제일모직"이라며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지분 확보 관련 논의가 시장 기대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올해 1월 "제일모직, 사야 한다 강하게"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등장했다. "예상보다 빠른 제일모직의 주가 상승에 따라 삼성물산과의 합병 시나리오가 용이해졌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두 개의 보고서는 모두 교보증권에서 지배구조(지주회사 포함)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백광제 연구원이 쓴 것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발표하기 5개월 전 나온 것이다.

◆ 지배구조 개편 핵심은 시간과 비용

"지난해 제일모직이 상장을 발표했을 당시 많은 연구원들이 삼성물산 합병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했죠. 하지만 짧아도 2년 안에는 힘들거라고 대부분 예상했습니다. 전 12월부터 운을 뗐죠. 제일모직은 주가가 올라갈 여지가 많고, 제일모직 주가가 많이 올라가면 지배구조 개편이 빨라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해 제일모직은 상장 5개월 후인 지난 5월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전격 발표했다.

이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44일간의 힘겨운 공방을 치른 끝에 지난 7월 17일 주주총회를 통해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2020년 매출 60조원, 세전이익 4조원을 목표로 세우고 9월 1일 통합 삼성물산으로 정식 출범했다.

"지배구조 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그 과정에서 어느 기업이 수혜를 입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당사자인 기업에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순전히 연구원의 '상상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죠. 소설에 가깝다고 해야 합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으로 적중률을 입증한 백 연구원이지만 지배구조 관련주를 들여다보는 일은 '정답이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정답을 맞춘다 해도 좋아할 사람이 없고, 정답을 맞추는 일 자체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합병 등을 동반한 지배구조 개편은 회사마다 유·불리가 명확하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마냥 좋은 일만도 아니라는 게 백 연구원의 생각이다.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예상할 때 연구원마다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다릅니다. 전 '어떻게 하면 가장 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가' 하는 걸 중요하게 보죠.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완벽한 것인가'를 따지는 연구원도 있습니다. 어떤 기준을 놓고 보느냐에 따라서 점치는 시나리오도 제각각일 수 밖에 없죠."

삼성SDS·SDI 합병, 지배구조 단순화

그가 삼성물산 합병 이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후속으로 예상하는 건 삼성SDS와 삼성SDI의 합병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이후 신규 순환출자로 삼성SDI가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4.8% 가량 보유하게 되는데 이 부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단 합병으로 인해 새로 생긴 순환출자에 대해선 '6개월 내 해소'라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삼성SDI가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시장에 내다팔거나 오너 일가가 사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삼성SDI가 가진 통합 삼성물산 지분은 관계사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유리합니다. 특히 삼성SDS와 합병하게 되면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단순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삼성전자의 지배력이 없거나 약한 관계사 지분을 확보하는 일도 가능해지죠."

만약 통합 삼성물산과 통합 삼성SDS(SDS+SDI)를 가정하면 호텔신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삼성그룹 산업 분야 계열사는 오너 일가(3세) 지배구조 아래 놓이게 된다.

이후 통합 삼성SDS와 삼성전자의 추가 합병이 이루어진다면 '오너 일가→통합 삼성물산 → 삼성생명 → 통합 삼성전자 → 나머지 산업계 계열사'의 수직 지배구조가 완성될 것으로 백 연구원은 보고 있다.

"최근 삼성SDS와 삼성SDI 주가 움직임을 감안하면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합병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고 판단합니다. 만일 합병이 결정되면 삼성SDS와 삼성SDI 두 회사 주가에 모두 긍정적일 것으로 봅니다."

삼성SDS와 삼성SDI가 합병할 경우 시장 일각에서는 사업 시너지가 전혀 없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업 시너지가 없어 보이는게 이익 측면에선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게 백 연구원의 판단이다.

동종 업종 간의 합병이라면 해당 산업 주기에 따라 불황이면 같이 불황을 겪을 수 밖에 없어 '보완' 효과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역시 외견 상 사업 시너지가 크지는 않아 보입니다. 제일모직이 사업 규모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순 있겠지만 이보다는 이익 안정성 측면에서 바라보는게 더 정확하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삼성SDS는 캡티브(계열사 내부) 매출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삼성SDI 사업 전망이 불안할 때도 안정적인 현금 확보가 가능해질 수 있죠."

현대차 순환출자 단순해도…해소 '글쎄'

백 연구원이 지배구조 관련주 가운데 삼성그룹 다음으로 주목하는 건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순환출자가 삼성그룹보다는 단순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의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지주회사 격인 현대모비스가 현대차를 지배하고, 현대차가 각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돼 있다.

순환출자 고리는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 ▲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현대제철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4개.

"현재로선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하는 것이 유력한 방안이지만 이 또한 쉬운것은 아닙니다. (합병을 위해) 글로비스 가치를 올리고 모비스 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요인이 전혀 없죠. 어찌보면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에 있어서 시기를 좀 놓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개편을 하려면 이미 예전에 글로비스와 모비스를 합치던가 했어야죠."

앞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시장에서 매각한 걸 고려하면 현대모비스와의 합병을 염두에 둔 것 같지도 않다는 게 백 연구원의 판단이다.

그는 다만 정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만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당장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국내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2세에서 3세로 넘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앞으로 1~2년 간은 지배구조 관련 트렌드가 증시 주축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경영권을 둘러싸고 '형제의 난'을 벌인 롯데그룹도 최근 신동빈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호텔롯데 상장을 비롯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롯데는 지난 달 26일 태스크포스(TF)팀을 발족해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전환, 경영 투명성 제고 등 4가지를 지배구조 관련 4가지 중점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현재와 같은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면 외부 공격에 취약할 수 있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도 지주회사 체제로의 지배구조 개편을 해 나갈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배구조 관련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에 불과하죠. 투자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는 건 좀 위험한 일입니다.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투자 대응에 참고하는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