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역설'…마른 환자보다 중증 뇌경색 발생률 낮아
‘살찌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상식에 가깝다. 하지만 최근 이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승훈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팀은 최근 이 병원에 입원한 급성 뇌경색 환자 2670명을 분석했다. 뇌경색은 뇌혈관이 막혀 뇌 조직의 일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분석 결과 가장 뚱뚱한 뇌경색 환자는 가장 마른 환자보다 중증 뇌경색 증상을 보일 확률이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이 교수팀은 비만도에 따라 환자를 다섯 그룹으로 나눠 입원 초기 뇌경색 강도를 분석했다. 마른 그룹을 100으로 봤을 때 중증 뇌경색 발생률은 비만도가 높아질수록 65, 48, 39, 31로 점차 낮아졌다. 환자의 치료 결과에도 영향을 줘 뚱뚱한 환자일수록 치료 3개월 뒤 결과가 좋았다.

이 교수는 “뇌경색은 큰 혈관이 막히거나 심장질환 때문에 발생하면 증상이 심하다”며 “비만인 환자들은 작은 혈관이 막혀 뇌경색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작은 혈관이 막히면 큰 혈관이 막힐 때보다 증상이 심하지 않다는 얘기다. 비만인 사람들이 왜 중증 뇌경색을 앓을 확률이 낮아지는지 구체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몸속 지방세포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뚱뚱한 사람은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마른 사람보다 더 적극적으로 위험 요인을 관리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알츠하이머에 이런 ‘비만의 역설’이 적용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같은 알츠하이머 환자만 놓고 보면 뚱뚱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을 덜 앓고 오래 산다는 것이다.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교수팀은 지난 3월 약간 뚱뚱한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사망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마른 알츠하이머 환자는 보통 수준인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1.8배 높았지만 약간 뚱뚱한 환자는 사망 위험이 보통 환자의 60% 수준이었다. 마른 환자는 영양실조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시아인 114만명을 분석한 비만 연구에서는 약간 뚱뚱한 사람의 사망률이 가장 낮게 나왔다.

뚱뚱한 뇌졸중 환자는 보통인 환자보다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비만의 역설이 왜 발생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 설계에 문제가 있거나 숨겨진 의학적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연구 결과를 믿고 체중관리를 게을리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