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 한줄 바꿨더니 500명 고용이 따라왔다
경기 부천시 송내동에서 선풍기 자동펌프 등의 생산공장을 42년째 가동 중인 신한일전기는 올초까지만 해도 이 공장의 베트남 이전을 검토했다. 40년 가까이 도시계획 규제에 막혀 공장 신·증축을 못하면서 부천공장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서다. 레인지후드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해 히타치 등 일본 기업에 대한 수출 길을 뚫었으나 낙후된 설비로 인해 품질 수준을 맞출 수 없었다. 400여명의 한국인 근로자 일자리도 사라질 판이었다.

신한일전기 부천공장을 되살린 건 정부가 바꾼 도시계획 지침 한 줄이다. 1개의 건축물에 2개 이상의 용도지역이 설정된 경우 도시기본계획 변경 없이 경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가 지침을 바꾸면서 공장 재건축이 가능해졌다. 2017년께 공장 신·증축이 끝나면 일자리 100여개가 추가로 생길 것으로 회사 측은 전망했다.

도시계획 지침 변경의 효과

지난달 31일 신한일전기 부천공장에 들어서자 ‘규제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건물 한 동은 붕괴 위험을 막기 위해 철제 지지대가 떠받치고 있었다. 공장 가동에 필요한 10여개의 전선은 건물 외벽에 걸쳐져 있었다. 1960~1970년대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했다. 이 회사 강남규 상무는 “외환위기도 큰 구조조정 없이 넘겼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근로자만 고용해왔는데 공장 증축 규제에 막혀 공장을 포기할 위기에 몰렸었다”고 설명했다.

이 공장은 우연히 도시계획 규제에 묶였다. 1976년 당시 건설부가 부천 송내동 일대를 주거지로 변경하면서 경계선을 그었는데 공장부지(2만3441㎡)의 절반가량(1만1452㎡)이 주거지역으로 들어갔다. 이 경계선이 생기면서 공장을 증설할 수도 없어 건물 지붕에 닿는 큰 기계를 들여놓기 위해 바닥을 60~70㎝ 파내려가는 궁여지책을 동원하기도 했다.

문제 해결의 단초는 정부가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통한 규제 완화에서 나왔다. 국토부는 신한일전기 부천공장의 신·증축을 위해 ‘도시·군관리계획 지침’을 바꿨다. 기존엔 시장·도지사 승인뿐만 아니라 수도권 정비심의까지 받아 도시기본계획 전체를 바꿔야 용도구역 변경이 가능했다. 신한일전기는 공장 재건축을 위해 부천시와 세부 내용을 협의 중이다.

8천억 투자 끌어낸 그린벨트 규제 완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 완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그린벨트로 묶인 안산공장 옆 부지에 1600억원을 투자해 연료전지 발전소를 세우기로 하고 경기도와 지난달 말 협약을 맺었다. ‘연료전지 설비는 도시계획시설 부지에 설치하는 경우로 한정한다’는 조항을 새롭게 해석해 설치 범위를 확대하고 시행령을 명확히 개정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SK E&S도 답보 상태였던 위례신도시 내 열병합발전소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린벨트에 설치할 수 없었던 가압(加壓)시설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정병윤 국토부 국토도시실장은 “산업단지 외 도심 주변과 외곽지역 4000여개 공장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8000억여원의 투자 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령과 배치되는 지자체 조례 개정 필요

법령상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묶여 기업들이 고전하는 사례는 아직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냉동·냉장 진열장 등을 만드는 세대산전은 요즘 제품 주문량의 20%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가동한 경기 고양시 장항동 공장 일대가 2005년 농림지역으로 바뀌면서 건폐율(부지면적 대비 건물 1층 바닥면적) 규제에 묶여 설비 증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건폐율 상한을 20%에서 40%로 높이는 ‘기업규제완화 특별법’ 개정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으나 이번엔 지자체 규제에 막혔다. 공장 신축 인허가 과정에서 용적률(부지면적 대비 건물 총 연면적)을 80%로 제한한 고양시 조례가 원인이었다. 이홍근 세대산전 대표는 “신제품이 인기를 끌며 영국 테스코 등이 200여억원어치 제품 구입을 타진하는 등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며 “조립공장이라 공해물질도 배출하지 않는데 왜 신축을 규제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양시는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