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원자력의 새로운 발걸음
올해는 국내 원자력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일이 많았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고리1호기 영구정지 결정 등이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의 길이 열렸다. 또 원자력발전소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고, 원전 기자재 수출에도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리1호기 영구정지 결정은 원전해체라는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게 됐다는 점에서 가슴 설레는 일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세계 원전해체 시장 규모가 2050년 약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원전해체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독일, 일본뿐이다. 한국이 이 기술을 키운다면 세계 원전 시장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돌이켜 보면 2005년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 당시에도 애를 태웠다. 고심 끝에 주민 투표 방식을 도입했고, 19년간 미해결 국책사업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마치 99칸 집 대문을 들어가기 위해 첫 번째 문을 연 것과 같은 일이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과 원전의 해체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그렇고,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에 더욱 어렵다. 정부와 국민 그리고 지역주민과 비정부기구 간 인식이 다르다. 신뢰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난제를 제대로 해결해야만 우리 후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해온 저력을 갖추고 있다. 관련 기술력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만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원전해체에서도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기술적 전문성을 갖춘 집단은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집단은 여러 의견을 수렴해 최선의 대안을 결정하고, 감시하는 집단은 엄격히 감시 통제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동안 원자력 발전은 국가 경제 활성화와 맥을 같이했다. 지난날 오일쇼크로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도 원자력이라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청년 실업과 경기 침체의 어두운 그늘을 극복하고 우리 경제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조석 <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seok.cho@khn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