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커리어 그랜드슬램' 새 역사 쓰다
박인비(27·KB금융그룹)가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아시아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대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박인비는 3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의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 에일사 코스(파72·6410야드)에서 끝난 브리티시 여자오픈(총상금 300만달러)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버디 7개, 이글 1개를 몰아치고 보기는 2개로 막으며 7언더파 65타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한 박인비는 고진영(20·넵스)을 3타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은 45만달러(약 5억2000만원)다.

이날 전반만 해도 고진영의 기세가 매서웠다. 고진영은 한때 박인비를 4타 차로 앞서며 깜짝 우승을 차지하는 듯했다. 하지만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답게 박인비는 후반부터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속 30㎞의 강풍과 세찬 빗방울 속에서 경기를 시작한 박인비는 5번홀까지 버디 2개, 보기 2개를 맞바꾸며 우승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7번홀부터 4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상승세를 탔다. 좋은 흐름을 이어가던 박인비는 14번홀(파5)에서 짜릿한 이글을 낚으며 승기를 잡았다.

마지막까지 박인비와 우승 경쟁을 벌이던 고진영은 16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이 개울에 빠지면서 타수를 잃은 것이 뼈아팠다. 마지막 홀에서 박인비의 버디 퍼팅이 홀을 스치고 나왔지만 이미 승부는 기운 상태였다.

박인비는 이로써 역대 일곱 번째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2003년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 이후 12년 만이며 남녀 골프를 다 합쳐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 기록이다. 2008년 US오픈에서 처음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박인비는 2013년 나비스코 챔피언십과 LPGA 챔피언십, US오픈을 휩쓸었고 이번에 브리티시오픈 우승컵까지 품에 안으면서 커리어 그랜드슬램 대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루이스 석스(1957년), 미키 라이트(1962년), 팻 브래들리(1986년), 줄리 잉스터(이상 미국·1999년), 캐리 웹(호주·2001년), 소렌스탐(스웨덴·2003년)까지 박인비 이전에 6명이 있었다

이번 대회 직전까지 박인비는 지난 6월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3연패를 달성하는 등 메이저 대회에서만 6승을 기록했다.

고진영은 아깝게 우승 문턱에서 무너졌지만 전인지(21·하이트진로)에 이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힘을 전 세계에 확실하게 보여줬다. 유소연(25·하나금융그룹)도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8)와 함께 공동 3위를 차지하며 이번 대회를 ‘한국 잔치’로 만들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