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재무설계, 직관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
의사결정 분야의 권위자인 민재형 서강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내는 퀴즈가 있다. 이 퀴즈를 풀 때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문제를 너무 빠르거나 느리게 읽지 말고, 보통 속도로 한 번 읽은 뒤 바로 답을 말하라는 것. 이 조건을 유념해서 아래의 퀴즈에 도전해보자.

“야구방망이 1개와 야구공 1개의 가격을 합하면 1만1000원이다. 야구방망이는 야구공보다 1만원 비싸다. 야구공 1개의 가격은 얼마인가?”

많은 사람이 야구공 1개의 가격을 1000원이라고 답한다. 이 문제는 조금만 시간을 갖고 생각하면 답이 500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1000원이라고 답할까. 퀴즈를 풀 때 차분히 생각하지 말고 답하라고 한 조건 탓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의사결정 방식을 두 가지(시스템1, 시스템2)로 구분했다. 시스템1은 무의식적으로 매우 빠르게 이뤄지는 직관에 의존한 판단이다. 시스템2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논리적 사고에 기초해 이뤄진다. 위의 퀴즈를 푸는 조건은 시스템1에 의해 판단하라는 의미였다. 이 조건을 충실하게 지켰다면 오답을 말한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직관에 의존한 시스템1이 잘못된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직관과 경험에 기초해 재빨리 최선의 결정을 내릴 때도 많다.

그렇다면 인생 100세 시대에 대비하는 생애재무설계에서는 어떤가. 연금도 들고, 적당한 금융상품으로 자산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상품을 선택한 뒤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직관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 상품 좋다더라, 저기 투자하면 짭짤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더라”는 주변의 권유에 솔깃해 과감한 투자결정을 하는 식이다.

생애재무설계에서는 직관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 대신 논리적 사고에 기초한 시스템2를 활용해야 한다. 먼저 자신과 가족의 생애설계연표를 작성해 앞으로 목돈이 드는 중요한 재무 이벤트가 무엇인지, 금액이 얼마일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정리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자산부채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이때 여러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자산분석 서비스를 활용해도 좋다.

재무 목표를 정리하고, 자산부채 상태도 점검했다면 재무 목표에 맞게 금융상품을 정비해야 한다. 노후자산이 부족하다면 연금을 보충하는 식이다. 직관에 의존한 즉흥적인 선택보다는 차분하고 논리적인 사고로 100세 시대 생애재무설계를 시작해보자.

장경영 <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