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을 위한 국내 조찬모임은 1973년 한국능률협회가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기업인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급속한 산업화에 맞춰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것. 현장 기업인들에겐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조찬모임은 사치에 가까웠고, 참석률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조찬모임이 생긴 지 40여년. 기업인들이 달라졌다.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와 인문학, 심리학, 예술 수업 등을 듣기 시작했다.
[조찬 포럼에 몰리는 중기 CEO] 새벽길 나서는 2~3세 경영인 "회사 키울 혁신, 회사 밖에 있다"
지식 찾아 회사 밖으로 나온 기업인들

미국 저널리스트 월터 키켈 3세는 저서 ‘전략의 제왕’에서 “미국에서 새벽에 길을 가다 돌을 던지면 조찬모임과 포럼에 가는 기업인이 맞는다”고 했다. 아직 국내 사정은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기업인이 지식, 네트워크, 힐링을 찾아 새벽길을 나서고 있다.

31일 오전 7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회의실 밖으로 흘러나왔다. “논어엔 ‘민이호학 불치하문(敏而好學不恥下問)’이란 말이 나옵니다. 배움을 즐기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기업을 이끌고 있는 여러분이 꼭 새겨야 할 말입니다.”

‘SB-CEO스쿨’ 조찬모임에 강연자로 나온 김병조 조선대 교육대학원 교수가 논어의 한 구절을 읊으며 설명하는 말이었다. 개그맨으로 더 잘 알려진 김 교수는 “이른 시간부터 회사 경영과 직접 관계가 없는 논어, 명심보감 강연에 온 것은 아마도 이런 얘기를 듣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배우겠다는 열정을 잊지 말고 자신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70명의 기업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 목소리로 ‘민이호학 불치하문’을 따라 읽었다.

2~3세 중심 ‘듣는 CEO’ 열풍

전문가들은 세미나와 포럼 등에 참석하는 기업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넓은 시야’라고 입을 모은다. 외부에서 다양한 지식과 자극을 받아들여 창조적인 기업을 일구는 게 이들의 목표다. 이런 열풍은 2~3세 경영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부모가 물려준 사업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성장시키도록 답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금고 제조업체 신진금고의 3세 경영인 이정은 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매주 화요일 오후 1시30분부터 5시간 동안 진행되는 중소기업중앙회 ‘차세대 CEO스쿨’에 나간다. 이씨는 “트렌드에 맞춰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전략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전략을 위해 함께할 나만의 사람들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경영진과 직원들 사이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것도 이씨가 얻은 소득이다. 이씨뿐만 아니라 이 모임에선 올해 상반기에만 190명의 2~3세 경영인이 교육을 받았다.

배움에 대한 욕구가 상대적으로 강한 2~3세 경영인을 위한 체계화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신설된 프로그램도 있다. 세계경영연구원(IGM)이 지난해 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경영 후계자 과정 ‘MMPS’가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현장에 빨리 적응하고 자신만의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2~3세 경영인들의 요청으로 마련됐다. 25명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현재 47명으로 늘었다. 수업은 경영 등을 배우는 정규강의, 인문학 강의, 현장학습 등으로 구성됐다. 이 중 절반은 부모 경영인들이 듣는 경영 과정인 MMP의 수업과 내용이 같다. 배보경 IGM 부원장은 “부모와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해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네트워크 찾아 나선 여성 CEO

네트워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최고경영자(CEO) 등에게 세미나, 포럼 등은 인맥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박혜숙 현대엠엔케이 대표는 “술자리 접대 등에 익숙하지 않은 여성 기업인들은 인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찬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러 업종의 기업인을 만나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인뿐 아니라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도 조찬 세미나, 포럼에 참석해 CEO들은 네트워크 범위를 더욱 넓힐 수 있다. 권오성 비바스포츠 대표는 “공무원, 회계사, 변호사 등도 CEO 모임에 자주 참석한다”며 “지식만 쌓는 것이 아니라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자문을 할 수 있는 인맥까지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