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랑을 찾은 관람객이 김동유의 작품 ‘마릴린 먼로·클라크 게이블’을 감상하고 있다.
노화랑을 찾은 관람객이 김동유의 작품 ‘마릴린 먼로·클라크 게이블’을 감상하고 있다.
서양화가 이석주 씨(63)는 단색조의 추상과 미니멀리즘 같은 개념미술이 유행하던 1970년대 후반부터 시계 말 책 등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리는 극사실주의 화풍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 극사실주의 1세대’로 분류된 그의 작품에는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과는 다른 우리 특유의 맛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씨를 비롯해 한만영 김동유 이원희 윤병락 안성하 전병현 김덕기 이호련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가 지난 29일부터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진화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현대인의 감성과 힘찬 에너지, 새로운 꿈의 동력을 색채예술로 표현한 20여점이 걸렸다. 30~60대 작가들의 다채로운 화풍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전시 제목을 ‘세대 공존’으로 붙였다. 서구 회화에서 느끼지 못한 한국 회화 특유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다.

작가들은 첨단 산업사회에서 겪는 현대인의 감성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화면에 쏟아냈다. 50대 팝아티스트 김동유 씨는 마릴린 먼로와 클라크 게이블의 얼굴을 대형 캔버스에 모자이크처럼 수놓은 작품을 내놓았다. 작은 붓으로 그린 우표 크기의 게이블 얼굴 수백개로 먼로의 대형 초상화를 만들어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인의 관음증적 욕망을 화폭에 주로 담은 30대 이호련 씨는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오르다 상체를 굽힌 여성의 뒷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잡아냈다. 관람객의 관음적인 시선과 신체를 드러내는 여성의 행동이 충돌하는 지점을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철판 오브제로 명화 이미지를 패널에 콜라주한 한만영 씨의 작품, 유리 재떨이 속 담배와 사탕을 그린 안성하 씨의 작품, 윤병락 씨의 사과 그림, 김춘수 씨의 청색 추상회화, 이원희 씨의 누드화 등에서도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미감을 느낄 수 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프리즘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며 “작품을 통해 우리 미술의 계보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달 31일까지. (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