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얘기 나눌까’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왼쪽)이 28일 밤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차 안에서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얘기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무슨 얘기 나눌까’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왼쪽)이 28일 밤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차 안에서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얘기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신격호 총괄회장(93)의 지난 27일 갑작스러운 일본행은 롯데그룹 2세 승계구도에서 밀려난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61)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으로 하여금 신동빈 회장(60)을 비롯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하도록 부추겼다는 게 롯데그룹 측 설명이다.

이번 사태는 신 총괄회장이 친족 5명과 함께 전세기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시작됐다. 5명 중에는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5촌 조카인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일본행은 신 총괄회장 집무실이 있는 호텔롯데는 물론 한국롯데그룹이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에 도착한 신 총괄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를 찾아 자신을 제외한 롯데홀딩스 이사 전원(6명)을 해임했다. 지난 15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신동빈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도 포함됐다. 롯데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으로 이사들의 이름을 가리키며 해임하라고 롯데홀딩스 직원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이 반란을 주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신 총괄회장은 이어 자신이 해임한 쓰쿠다 사장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고령인 신 총괄회장의 판단이 온전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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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안 신 회장이 즉각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신 전 부회장의 반란은 불발됐다.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 6명은 28일 정식 이사회를 열고 ‘해임 결정은 정식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 결정’으로 규정하는 한편 신 총괄회장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경영권과 무관한 친족들이 신 총괄회장의 대표이사 지위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의 승계는 지난 15일까지만 해도 신 회장이 ‘완승’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반면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 일본롯데 부회장,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잇따라 해임되는 등 갈수록 지배력이 약해졌다.

그러나 신 회장이 대표로 선임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신 전 부회장이 반격에 나섬에 따라 경영권 승계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관측이 재계에서 나온다.

재계와 롯데그룹 등에 따르면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는 광윤사로,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27.65%를 갖고 있다. 신 회장의 롯데홀딩스 지분은 19.1%며 신 전 부회장 지분은 이보다 조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신 총괄회장이 나머지 지분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후계 구도는 언제나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광윤사는 신 총괄회장이 지분 50%가량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 지분 구조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신 회장은 이날 밤 신 총괄회장이 한국으로 돌아온 데 대해 “연로한 아버지를 이틀 연속 비행기를 태워 한국과 일본을 오가게 하다니, 가족이면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