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 차입금 급증…실물경제 위험 더 커져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의 차입금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들이 저금리에 편승해 은행 대출 등을 계속 늘리는 방식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적극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부실 위험도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입금 석 달 새 15% 급증

LG경제연구원은 628개 비(非)금융 상장회사를 분석한 결과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좀비기업’에 해당하는 회사는 총 159개사로 전체의 25.3%를 차지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이들 기업의 평균 차입금은 6774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15.1% 늘어났다. 좀비기업의 차입금이 전체 기업의 차입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4.6%로 같은 기간 5.5%포인트 상승했다.

분석 대상 상장사 중 좀비기업 비중은 2012년 이후 지난 3월 말까지 24~25%대를 유지하고 있다. 연구원은 좀비기업 비중은 늘지 않으면서 차입금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좀비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차입금을 계속 늘릴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한계 기업 상당수 잠복

낮아진 대출금리는 좀비기업의 ‘인공호흡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평균 기업대출 금리는 작년 말 연 4.1%에서 지난 5월 말 연 3.7%로 낮아졌다. 금리가 낮아진 만큼 싼값에 돈을 빌려 버티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좀비기업의 상황은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원은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좀비기업 비중은 26.9%로 지난 1분기 말(25.3%)보다 1.6%포인트 높아지고, 금리가 2%포인트 상승하면 비중이 30%를 웃돌 것”이라고 추정했다.

전체 기업 차입금에서 좀비기업의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큰 폭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좀비기업의 차입금 비중은 1분기 말 34.6%에서 41.2%로 6.6%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상승에 좀비기업 수보다 차입금 비중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차입금 규모가 큰 기업들이 현재 정상기업과 좀비기업의 경계에 서 있다는 의미”라며 “한계 상황에 놓인 기업들이 상당수 잠복해 있다”고 진단했다.

◆재무구조 개선 필요

좀비기업들의 수익성이 개선되면 대출 금리가 올라도 부실 위험도는 낮아진다. 하지만 국내 경기 회복세가 미약해 좀비기업들의 부채상환 능력이 빠르게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가 좀비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잠재적 부실 위험이 커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존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선 자산매각이나 자본재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대해선 퇴출을 유도하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이 연구위원은 “향후 금리가 오르면 좀비기업의 부도로 실물경제에 충격이 예상되는 만큼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좀비기업

제품을 팔아서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아 은행 대출로 연명하는 기업. LG경제연구원은 영업이익이 이자보다 적으면서 빌린 돈이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의 다섯 배 이상인 상장회사를 좀비기업(고위험 기업)으로 분류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