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로 세포 교정…혈우병 완치길 열었다
피가 멎지 않는 유전 질환인 혈우병을 유전자 교정을 통해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연구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사진)과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의 공동연구팀은 23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혈우병 유전자를 교정한 줄기세포를 병을 앓고 있는 생쥐에 이식해 출혈 증상을 현저히 개선시켰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이날 생명과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셀의 자매지 스템셀 온라인판에 실렸다. 박철용 연세대 의대 연구원, 김덕형 IBS 연구원, 손정상 고려대 생명공학부 연구원 등이 논문의 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혈우병은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혈액 내 응고 인자가 부족해지는 질환이다. 인구 1만명에 한 명꼴로 발병한다.

연구팀은 혈우병 환자의 소변에서 세포를 채취해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뒤집어진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잘라내 정상으로 되돌렸다. 이 줄기세포를 혈관 내피 세포로 분화시켜 혈우병 생쥐에 이식했다. 혈액의 응고 인자 활성도가 10배 이상 개선됐다.

아직 테라토마(줄기세포 중 일부가 다른 기관으로 분화돼 나타나는 기형 조직) 가능성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5~10년이면 임상시험을 거쳐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단장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관련 연구에서만큼은 우리 연구팀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봐도 된다”며 “유전질환뿐만 아니라 감염병이나 암 등 활용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