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세계의 정원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세운 학교 이름이 ‘가든 스쿨’이었다니 뜻밖이다. 이곳에 채소와 허브를 키우는 키친가든까지 마련해 식물을 키우고 흙을 돌보며 철학을 얘기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원의 회랑을 따라 걸으면서 사색하고 토론했다. 소요학파의 강의실이 곧 정원이었다.

정원의 모양은 문화권별로 달랐다. 스페인 정원은 중정식(中庭式)이다. 중세 이슬람 정원의 특징을 접목해서 아케이드나 발코니 중앙에 안뜰을 배치했다. 알함브라궁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식 정원은 구릉지에서 자연을 전망할 수 있게 한 노단(露壇) 스타일이다.

프랑스식 정원의 특징은 평면기하학 양식이다. 17세기 베르사유궁 정원은 자로 잰 듯한 직선이다. 이런 정형식(整形式)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서구사상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멋모르고 이를 흉내 낸 러시아의 여름궁전 등은 유치함의 극치라는 혹평을 두 배로 받아야 했다. 프랑스는 18~19세기 들어서야 영국이나 중국의 자연주의 풍경식(風景式)을 받아들였다.

영국식 정원은 인위적인 프랑스풍과 달리 전원을 중시했다. 18세기 중엽 풍경화가와 시인들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중국도 자연주의 풍경식이다. 영국 사실주의에 비해 사의주의(寫意主義) 경향이 강해서 풍경의 단순 묘사보다 동양적 우주관을 기암괴석으로 표현한 게 많다.

일본도 중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정원에 모든 요소를 축소해 모아놓은 밀집형이 특징이다. 극소의 정원인 분재나 분경(盆景)도 여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과연 아기자기한 일본 스타일이다. 우리나라는 자연모방형이면서 소박한 절제미를 중시했다. 동양 3국의 공통점은 정원에 반드시 연못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우리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담장을 높게 두른 게 차이점이다.

프랑스 정원역사가 자크 브누아 메샹은 정원을 ‘은둔의 장소이기 이전에 은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장소, 휴식의 장소이기 이전에 각성의 장소’라고 말했다. 녹음 속의 아늑한 평화에서 시적인 영감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원은 인간과 자연의 내밀한 접점에서 피는 꽃과 같다.

국가정원 1호로 순천만(順天灣)정원이 지정될 모양이다. 식물 재배 등 1차산업부터 관광·교육 등 6차산업까지 연계한 정원산업 활성화 정책이라고 한다. 취지야 이해하지만 말이 너무 중후장대하다. 아름다운 한국의 정원이라면 비원(秘苑)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