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간통죄 폐지 후…'사랑은 무죄, 주거침입만 유죄?'
아내 지갑을 열자 날짜가 지난 영화표 두 장이 눈에 띄었다. 이번 주말 함께 보기로 한 영화였다. ‘나 말고 누구랑 봤을까’.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의 휴대폰을 살폈다. 카카오톡을 열자 채팅목록 첫머리에 병원장 김모씨와의 대화창이 떴다. 아내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프랜차이즈 병원의 월급쟁이 의사였다. ‘원장과 업무 얘기를 나눴나?’ 별 생각없이 채팅방을 눌렀다. ‘쿵쾅쿵쾅’ 심장소리가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아내가 바람이 났다.

아내와 병원장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은 2년 전이었다. 병원장 가족과 우리 부부는 학회나 병원 내 친목 여행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병원장에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한 명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다그치자 아내는 “원장을 사랑한다”고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살다보면 가끔 곁길로 새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도 했다. 결혼한 지 3년도 안 됐는데 이혼하면 주위에는 뭐라고 얘기하지…. 그런데 아내의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났다. “나 그 사람 아이를 임신했었어…. 6주 정도에 아는 선배 병원에 가서 지웠어. 미안해.”

서울 서초동에서 유명하다는 이혼전문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관련자들을 모두 형사처벌했으면 싶었다. 변호사에게 모든 죄명을 동원해 고소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상간남 병원장은 간통죄로, 아내는 간통죄와 낙태죄, 낙태수술을 한 의사는 업무상촉탁낙태죄로 고소했다. 아내의 부탁을 받고 병원 진료기록부를 ‘낙태수술을 해달라고 요구함’에서 ‘계류유산(임신은 됐으나 태아가 보이지 않거나 사망한 태아가 자궁에 잔류하는 상태) 진단’으로 허위 수정한 의사를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올 2월26일 뜻하지 않은 복병이 생겼다.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는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더 이상 아내와 상간남을 간통죄로 처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상간남을 처벌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변호사가 상간남이 집에 드나든 적이 있으면 ‘주거침입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파트 폐쇄회로TV(CCTV)를 돌렸다. 낯도 두껍지…우리집에 허락도 없이 다섯 번이나 드나든 게 아닌가. 상간남 김씨를 주거침입죄로 추가 고소했다.

재판부는 낙태죄로 기소된 아내 이씨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진료기록부를 고의로 수정한 의사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업무상촉탁낙태죄로 기소된 의사에겐 “낙태의 허용한계 및 가벌정도에 대해 헌법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며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주거침입죄로 기소된 상간남 김씨에겐 벌금형 500만원이 처해졌다. 아내 이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