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에서 가장 큰 공자 사당인 ‘부자묘’ 앞 진회하
난징에서 가장 큰 공자 사당인 ‘부자묘’ 앞 진회하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으며 비 오는 날에도 좋다’는 중국 장쑤성(江蘇省). 4000년 전 양쯔강을 중심으로 고대 문화가 일어난 곳이다. 원나라 때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고향 베네치아와 닮았다 해서 쑤저우(蘇州)를 ‘동양의 베네치아’라 불렀다고 한다. 허풍이라면 한국 사람들도 어지간하지만 역시 ‘대륙의 허풍’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싶었다. 장마철인 탓도 있지만 여행 첫날부터 온통 흐린 하늘에 남방 특유의 후텁지근함까지…. 그 좋다는 ‘동방의 베네치아’는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BMW와 인력거를 함께 품은 고도(古都)…대륙의 '속살'을 만지다
난징(南京)공항에 내려 공항청사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처음 말을 걸어온 사람은 한국인 노래방 사장님과 도우미들. 찌푸려지는 인상을 애써 감추고 버스에 올랐다. 이번 여정은 난징, 쑤저우다. 예상했던 중국의 모습 그대로의 풍경이 스쳐갔다. 한 10여분 달렸을까. 도심에 진입하자 묘한 기운이 돈다. 쭉쭉 뻗은 마천루를 보며 “성도(省都)답구나”란 생각도 잠시, 땅에 발을 딛고 선 사람들의 모습은 1970년대 한국 그대로였다. BMW와 아우디, 오토바이, 자전거, 인력거가 차선 구분도 없이 같이 움직이고 있다.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낡을 대로 낡았지만 잘 관리된 기와 건물들. 호기심이 급발동했다. 어느샌가 반쯤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중국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장을 풀고 처음 도착한 곳은 ‘부자묘(夫子)’. 부자묘는 난징에서 가장 큰 공자 사당으로, 공자를 존경하는 의미의 ‘공부자(孔夫子)’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부자묘를 중심으로 갈래갈래 보행거리, 식당가가 즐비하다. 우리의 조선시대 성균관 같은, 요즘으로 치면 서울 혜화동 대학로 같은 곳이다. 부자묘를 휘둘러 정비해 놓은, 폭이 20m 이상은 족히 돼 보이는 수로를 한 바퀴 도는 배에 올랐다. 물이 맑지 않아 아쉬웠지만 양쪽으로 늘어선 전통 음식점부터 서구식 레스토랑들의 이색적인 풍경이 눈을 덜 깜박이게 했다. 베네치아는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 즈음, 난징의 매력을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했다.

그냥 크기만 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자묘 곳곳에는 섬세함이 녹아 있었다. 기둥 하나하나에, 조각 하나하나에 창문 문양만 해도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다. “중국이 이렇게 디테일한 곳이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한 모습에 장쑤성에 관한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산릉(中山陵)으로 갔다. 중국의 혁명가 쑨원(孫文)의 묘인데, 중산은 그의 호다. 능은 황제의 무덤에만 쓰는 명칭인데 이곳을 ‘능’이라 부르는 걸 보면 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을 가늠할 수 있다. ‘황제의 나라’ 중국을 공화국으로 만드는 데 일생을 바친 쑨원은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갈린 이념에 관계없이 ‘국부(國父)’로 칭송받고 있다.

392개라는 계단을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정상에 올라 쑨원의 상(像)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기이한 장면이 펼쳐졌다. 정상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난징 시내가 아니었다. 마치 평지를 걸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올라온 계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평균 키와 눈높이에 맞춰 계단 각도를 조절해 계단 한 칸 한 칸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는데, 정상에서 보면 중간중간 넓은 공간들이 연결된 큰 운동장처럼 보인다. ‘천하위공(天下爲公)’, 즉 ‘천하는 누구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는 사상을 담아 설계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80여년 전 중국의 건축기술이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에 잠시 경외감마저 들었다.

여행 사흘째. 기차를 탔다. 대합실 크기가 서울역의 10배는 족히 돼 보이는 난징난역(南京南站)에서 가오티에(高鐵·고속철)에 올랐다. 1시간 남짓 걸려 쑤저우에 도착했다.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가 극찬했다는 호구(虎丘)공원이 인상적이다. 춘추시대 오(吳)나라 왕 합려가 묻힌 곳으로, 합려가 전쟁에 패해 유명을 달리한 후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전설이 담긴 곳이다. 합려의 아들 부차가 ‘장작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은 끝에 복수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도 여기서 나왔다. 전설은 전설일 뿐, 호구공원의 매력은 따로 있다. 바로 분재다. 최고 400년이 넘은 분재를 비롯해 600여점의 국보급 분재는 문외한의 발길도 멈춰 세우기에 충분했다. 중국판 ‘피사의 사탑’으로 불리는 호구탑은 아쉽게도 공사 중이다.

중국 장쑤성 여행을 상하이 훙차우(虹橋)공항에서 마무리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장쑤성,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베네치아는 없었지만, 인파에 떠밀려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중국의 ‘속살’을 만져보고 싶다면, 난징·쑤저우 그리고 쿤산은 한 번쯤 다녀올 만한 곳이다.
392개의 계단을 올라야 쑨원의 상을 둘러볼 수 있는 중산릉 입구. 중국국가관광국 제공
392개의 계단을 올라야 쑨원의 상을 둘러볼 수 있는 중산릉 입구. 중국국가관광국 제공
이곳만은 꼭!
낮에는 졸정원…밤에는 산탕지에…


쑤저우에 왔다면 낮에는 졸정원(拙政園), 밤에는 산탕지에(山塘街)에는 꼭 가볼 일이다. 졸정원은 중국 4대 정원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명(明)나라 때 만들어졌다는데 중국 정원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오전 7시 개장이지만 1인당 388위안(약 7만원)을 내면 개장 한 시간 전에 아침밥과 함께 VIP대접을 받으며 산책할 수 있다. 산탕지에는 쑤저우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다. 호구공원을 편하게 가기 위해 만들었다는 수로 주변으로 각종 상점, 음식점,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단 산탕지에에서는 반드시 가방을 앞으로 메야 한다. 소매치기 소굴이란다.

장쑤성(중국)=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