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장자연 리스트와 성완종 리스트
‘장자연 리스트’ 사건이 생각났다. 검찰이 최근 발표한 ‘성완종 리스트’ 사건 수사 결과를 보면서다. 2009년 한국 사회는 연예인 장씨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며 자신의 성접대를 받은 사람 명단을 남기고 자살한 사건으로 한동안 각종 설이 나돌면서 술렁였다. 당시 검찰은 성접대와 관련 없는 혐의를 적용해 장씨의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 등 2명만 불구속 기소하고 리스트 속 10명은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서도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의 8명 중에서 2명만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는 무혐의나 공소권 없음으로 끝냈다.

두 사건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유서로 수사가 시작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사 대상자가 권세깨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점도 같다. 결론이 용두사미였다는 점도 비슷하다. 유서로 수사가 시작됐지만 대상이 권세가가 아니었고 결론이 위와는 달랐던 사건이 있다. 2011년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 가해자의 명단을 유서로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목된 가해자는 평범한 중학생들이었다. 검찰은 미성년자인 이들을 “죄질이 나쁘다”고 구속 기소했다. 법원은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전직 법무부 장관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정권을 흔드는 스캔들은 검찰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낱낱이 수사하기보다 ‘정치적 타협’을 해야 정부가 일을 할 수 있고 그게 ‘대의를 위하는 길’이라는 취지였다. 개혁적이라는 사람조차 정치적 타협을 강조하는 마당에 개혁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마무리 지은 검찰의 생각은 어땠을까. 검사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과거에 정치적 상황 때문에 수사를 다 해놓고 묻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장자연 파문’의 교훈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연예계의 부적절한 접대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장씨 자살 뒤 시행된 한 설문조사에서 연예인 5명 중 1명이 ‘본인이나 동료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고 답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은 지금도 나오고 있다. 상당수는 유서를 남기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연예계에는 ‘제2의 장자연’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계기로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각에선 부실수사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