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영희 씨(청운신협 조합원·왼쪽)가 출장 수납을 위해 가게를 찾은 최병열 청운신협 과장과 활짝 웃고 있다. 청운신협 제공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영희 씨(청운신협 조합원·왼쪽)가 출장 수납을 위해 가게를 찾은 최병열 청운신협 과장과 활짝 웃고 있다. 청운신협 제공
환경미화원 25명이 43년 전 1만2000원을 출자해 설립한 대구 청운신용협동조합의 성공 스토리가 주목받고 있다.

1972년 설립된 청운신협은 올해 자산 90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0위권 저축은행에 필적한다. 연체율은 대형 시중은행 수준인 1.07%(6월 말)에 불과하다.

‘조합원 가정의 숟가락 숫자까지 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밀접한 관계를 맺은 덕분이다. 일부 신협이 부실 대출과 내부 비리로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청운신협은 지역에 뿌리를 내린 ‘관계형 금융’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운신협의 지난달 기준 자산은 8874억원에 달한다. 전국 917개 신협 평균 자산(676억원)의 약 13배다. 전체 신협의 약 10%가 적자를 보고 있지만 청운신협은 지난해 63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올 상반기 순이익도 32억원으로 집계됐다. 덕분에 매년 출자금의 3~4%를 조합원에게 배당한다.

'전국 1등' 대구 청운신협, 환경미화원들의 기적
김상수 청운신협 이사장은 “초기 신협의 상부상조 정신은 조합원 수가 4만여명으로 늘어난 지금까지 우리가 일관되게 지키고 있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청운신용협동조합 창립을 주도한 사람은 1972년 당시 대구 동구청 청소계 공무원으로 일하던 김영대 청운신협 명예이사장(74)이다. 김 명예이사장은 “청소부(환경미화원)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위기 때 조합원 예금 더 늘려

김 명예이사장이 신협을 설립하자고 제안했을 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다”며 가입을 꺼리는 환경미화원이 많았다. 하지만 신협에서 대출받아 장례를 치른 조합원이 나오자 문상을 온 사람을 중심으로 가입이 크게 늘었다. 1년 만에 조합원 수는 170명으로 증가했다. 대부분 환경미화원이었다.

몇 년 뒤부터는 지역 전통시장 상인들이 청운신협 가입 대열에 합류했다. 고금리 사채로 사업자금을 마련하던 상인들은 청운신협을 통해 연 24%의 금리로 20만원까지 돈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당시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연 24%였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오성화 청운신협 상무는 “상인들이 고금리 부담에서 벗어나자 저축하기 위해 청운신협을 찾는 선순환 구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청운신협에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4년 대구 지역의 일부 신협이 부실 경영으로 인가가 취소됐고, 청운신협도 당시 출장소가 폐지돼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직원들은 임금 70% 삭감을 견디며 ‘청운 살리기’에 나섰다. 조합원들도 동참했다.

조합원들은 돈을 빼가지 않고 오히려 예금을 늘렸다. 3년 만에 자산이 10억원 늘었고,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텃밭 경영’으로 신뢰 쌓아

청운신협 사람들은 40년 이상 지속된 조합의 성공 비결로 ‘텃밭 경영’을 꼽는다. 고객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정성을 쏟아 텃밭을 늘려 나가듯 조합을 키운다는 의미다. 그 결과 본점 포함해 지점 수가 11개로 늘었고, 직원 수는 106명이다. 조합원 수는 4만명에 달한다.

청운신협 직원들은 매일 시장을 돌며 조합원들과 만나고 예금을 직접 받는다. 현장에서는 조합원의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과금을 대신 내는 일은 기본이다. 이런 식으로 조합원들과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를 반영한 심사를 통해 신용대출이 이뤄진다.

대구 신천동 송라시장에서 생닭을 판매하던 조합원 임기정 씨도 청운신협의 텃밭 경영에 힘입어 위기를 극복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임씨는 대형마트가 등장하면서 손님이 끊겨 생계가 어려워진 2000년께 청운신협에서 신용대출을 받았다. 팔공산 인근에서 복숭아 농사를 시작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대출금도 제때 갚지 못했다. 하지만 청운신협은 임씨에게 대출금을 강제로 회수하지 않았다. 돈을 갚을 때까지 기다렸다.

청운신협 관계자는 “평소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저축하고, 지역 봉사활동에도 빠지지 않는 분이라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얼마 뒤 팔공산에 순환도로가 생기면서 임씨가 소유한 땅 값이 크게 뛰었다. 임씨는 땅 일부를 팔아 10년간 연체한 대출금을 갚았다.

연체율 40%대서 1%대로 낮춰

신협의 수익은 대부분 예대마진에서 나온다. 연체율을 낮추는 게 경쟁력의 핵심이다. 청운신협은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여신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2003년까지 40%가 넘던 연체율은 별도의 여신심의위원회를 둔 이후 급격하게 낮아졌다. 부실 대출 관리를 위해 지역신협으로는 처음 직원 4명의 감사실을 운영한 것도 연체율 관리에 도움이 됐다. 2010년 처음으로 연체율이 10% 이하로 떨어졌고, 올 들어선 1.07%까지 하락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협 고객의 60% 이상이 연체가 잦은 신용 5~6등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라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청운신협은 대구의 다른 신협을 인수합병하며 자산 규모를 키우고 있다. 2005년 범일신협을, 2007년엔 상공회의소신협을, 지난달엔 동인천주교회신협을 인수했다.

이지훈/대구=오경묵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