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예측불허…정부 대표단 "어디로 튈지 모른다"
'만 하루' 협상시간 벌어…합의불발시 관계개선 악재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이 포함된 일본의 산업혁명시설 세계유산 등재 문제가 결국 막판 벼랑 끝으로 몰렸다.

한일이 강제노동을 둘러싼 이견을 막판까지 좁히지 못하면서 4일 예정됐던 등재 심사 자체가 연기된 것이다.

독일 본에서 제39차 회의를 진행 중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당초 이날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10시)부터 일본의 산업혁명시설에 대한 심사에 착수,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일간 이견이 계속되면서 심사를 5일로 하루 연기했다.

세계유산은 위원국들의 만장일치로 등재를 결정하는 것이 관례인데 한일간 이견이 계속되자 합의를 위한 시간을 하루 더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막판 쟁점은 우리 대표단이 위원국들을 상대로 언급할 발언문으로 알려졌다.

일본측은 우리 정부에 사전 조율을 요구했고, 우리 정부가 난색을 표시하면서 이날 오후로 예정됐던 등재심사 시점까지도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발언록에서 당연히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한 23개 시설 가운데 7개 시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이뤄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려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측이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가지고 이를 바꾸기 위한 조율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일이 발언록을 놓고 다투면서 등재 결정문(Decision)에 강제노동과 관련한 표현이 어떻게 반영될지도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한일은 등재 결정문에 주석 형식으로 해당 시설에서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하기로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으로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이 직접 적시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본이 강제노동 표현을 염두에 두고 발언록을 문제 삼고 있는 만큼 등재 결정문에도 강제노동이라는 직접적 표현보다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우회적 표현이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문제는 한일이 '만 하루' 동안의 시간 동안 최종 합의에 이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대표단 관계자는 등재 심사 연기가 결정되기 직전 연합뉴스 기자에게 "in the dark(오리무중)",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전했다.

한일은 등재심사가 시작되는 5일 오후까지 협상을 계속할 것으로 보이지만 막판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최악의 시나리오인 '표대결'을 비롯해 자유토론을 통한 결정 등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의장국인 독일이 위원국들과의 협의를 통해 협상 시한을 하루 더 준 것은 물론, 한일을 제외한 나머지 19개국이 긴급회동을 갖는 등 합의를 종용하고 있고 막판 타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양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표대결'이라는 정면충돌로 갈 경우 지난달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물꼬를 틔운 대화분위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한일이 모두 염두에 두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의회 하원 의원 6명이 마리아 뵈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의장 앞으로 연명서한을 보내 부끄러운 노예노동에 대한 언급 없이 이들 시설의 성과 위주로만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한 것도 일본에 대한 압박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본·서울연합뉴스) 김태식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