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했는데도 검찰은 기소유지…어색해진 '세탁기 파손' 재판
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19호 법정. LG전자의 조성진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장(사장) 등 세 명에 대한 재물 손괴 및 업무방해 혐의 재판이 형사합의 29부(부장판사 윤승은) 심리로 열렸다. 이른바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 혐의’ 첫 재판이다.

형사 재판은 보통 검사의 날카로운 추궁과 피고 측 변호인의 반론 제기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이뤄진다. 이날 재판의 모습은 일상적인 재판과는 사뭇 달랐다. LG전자 측 변호인은 “삼성과 LG가 원만히 화해하고 소송을 취하, 처벌불원서(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까지 제출했다”며 “화해했음에도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이것이 과연 형사 처벌 대상인지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화해했는데도 검찰은 기소유지…어색해진 '세탁기 파손' 재판
이에 대해 검찰 측은 “기소한 뒤 양측에서 화해했는데 검찰 입장에서 난처하기도 하고 당황스럽다”며 “그래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짚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검찰로서도 계면쩍은 재판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듯이 들렸다.

이런 말이 오간 것은 보기에 따라선 다소 ‘이상한 재판’이기 때문이다. 조 사장 등은 작년 9월 독일 가전매장에서 삼성전자 세탁기(전시용)를 파손했다는 혐의로 삼성으로부터 고소당했다. 검찰은 조사 후 조 사장 등을 기소했다. 그런데 지난 3월31일 삼성과 LG가 전격 화해하고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내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고소도 취하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 힘을 합치자는 취지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재판이 열린 것은 양측이 합의했다고 해서 중단되지 않는 형사소송의 특징 때문이다. 기소한 주체가 검찰인 만큼 검찰이 기소를 취하하지 않는 한 재판은 열린다.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에서 시작해 약 1시간40분간 계속됐다. 검찰은 오는 21일 2차 공판을 열고 파손된 세탁기에 대한 검증을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이 끝날 무렵 방청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삼성과 LG가 화해하기로 했는데 경제도 어려운 마당에 과연 이 재판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가득해 보였다.

정지은 산업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