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에 대한 기업들의 문화예술 활동 지원이 관람기회 제공에서 직원들이 실력을 쌓아 시연할 수 있게 적극 지원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임직원의 문화예술 활동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인 창의성을 증진시킨다는 판단에서다. 또 문화예술 활동을 함께하면서 직원 간 소통이 활발해져 내부 역량을 모으고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직원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메세나 활동을 펼치면 기업의 대외 이미지도 높일 수 있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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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임직원은 오는 8월 말 회사에서 캘리그래피와 수묵일러스트 전시회를 연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배우고 익힌 솜씨로 직접 그린 캘리그래피와 수묵일러스트 작품 60여점을 선보일 예정. 이 회사 황석기 과장은 “집에서 아이들한테 캘리그래피나 수묵일러스트를 그려주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늘어나고 화목해진다”며 “실내 디자인을 직접 하거나 지인들에게 작품을 선물하는 등 쓰임새도 많다”고 말했다. 오는 11월에는 음악 연주회도 열 계획이다.

이 회사는 점심시간에 다채로운 문화 체험과 취미 활동을 지원하는 ‘런치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캘리그래피 수묵일러스트를 비롯해 바이올린, 통기타, 아트 전각, 도자기 공예, 댄스, 바리스타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친다. 직원들은 별도의 수강료 없이 재료비만 내면 돼 강좌마다 수강 인원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많다. 지난해에만 1500여명이 런치클래스에 참여했고, 올해도 비슷한 규모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남녀 승무원이 결성한 음악동아리 ‘윙어스밴드’와 ‘캐빈체임버앙상블’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K팝을 연주하는 윙어스밴드는 사내 행사뿐 아니라 대외 자선공연도 펼친다. 매년 12월에 서울 홍대 라이브클럽에서 재능기부 공연으로 모은 돈을 홀몸노인과 소년원생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

클래식 연주를 하는 캐빈체임버앙상블도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이다. 그동안 10여차례 병원에서 자선음악회를 열며 환자들을 격려했다. 회사 측은 승무원들의 공연 일정에 따라 스케줄을 조정해 주고, 회당 300만~400만원에 이르는 경비를 지원한다.

SK플래닛은 직원들이 각자 취미와 업무 관련 지식을 동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공유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가령 직원이 드럼, 기타, 키보드 등의 악기를 짧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악기? 5분 안에 끝내기!’란 제목의 동영상을 제작해 올려놓는 식이다. 이 회사는 프랑스 칸에서 열린 국제광고제 참관 경험을 담은 ‘칸 광고제 트렌드’와 비즈니스 영업 노하우 전수법 등 40여개의 동영상 콘텐츠를 이 같은 방식으로 제작해 공개했다. 직원들이 강사 겸 감독이 되는 것이다. 회사 측은 영상 제작에 필요한 지식과 비용, 도구 등을 지원한다.

SK플래닛은 ‘전문가급’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취미나 직무지식 등과 관련한 자신의 노하우를 전하는 ‘펀치’란 이름의 세미나도 지난 3월부터 열고 있다. 펀치 세미나는 자발적인 학습문화를 조성하면서 직원 각자가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키워주고 있다는 평가다. 첫회에 175명이 참여한 이후 최근 28회까지 매번 200명 안팎이 참여하는 등 ‘사내 흥행’에 성공했다. 한 직원은 자전거 문화와 취미 활동에 대한 전문 지식을 사물인터넷(IoT)과 접목해 자전거 시장과 센서테크를 연결한 새로운 시장을 소개했는데, 그 강의가 큰 인기를 얻었다.

국내 최대 음악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는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의 끼를 살리고 있다. ‘꼼지락 DIY(직접 만들기)’ ‘투유밴드’ ‘축구 동호회’ 등 8개 문화·예술·스포츠 동호회에 300여명의 전 직원 중 절반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박재롱 경영지원팀 매니저는 “회사가 개인당 월 2만원씩 지원해줘 여러 동호회가 계속 생기고 있다”며 “동호회는 회사를 즐거운 일터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대중음악을 하는 투유밴드는 서울 양재동에 있는 밴드 합주실에서 모여 연습해 매년 자작곡을 선보이고 공연을 연다. 올해에는 가을에 열 예정이다. 회원이 가장 많은 꼼지락 DIY는 매달 한 차례 모여 다양한 아이템을 내놓는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 크리스마스 때는 무드등, 여름에는 천연 모기퇴치 스프레이 등 아이디어 상품이 쏟아진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신혜 재무팀 매니저는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친목을 도모할 수 있다”며 “회사에서 취미생활을 하니까 스트레스를 해소해 힐링하는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