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다수결 아닌 변덕이 지배하는 국회
국회는 국가 의사의 결정기구란 점에서 인체에 비유하면 뇌와 같은 존재다. 요즘 한국은 몸체가 비상사태인데 뇌는 마비돼 아무 일도 못하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인터넷 평론가는 “국회가 망국의 요람이 되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 국회의 개혁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알려주는 시의적절한 경고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는 국회선진화법에 유도되는 이른바 ‘지도에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청년실업 대란을 해결할 경제활성화법이라며 시급한 처리를 요청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60여개 법안이 지금 국회에서 3년째 표류하고 있다. 보통의 의회국가에서 정부 여당이 공들여 추진하는 이런 법은 소수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통과되는 것이 상식이다. 야당은 국회에서 반대활동을 벌이겠지만 결국 표결에 임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며, 자신들이 집권할 때 역시 같은 과정으로 그들의 정책을 실현시키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수정주의 후예인 유럽 사회민주당들도 모두 이런 의회주의 행동을 통해 득표하고 집권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한국 의회에서는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 국회의원들이 정치문제와 국가적 사고를 빙자해 몇 달씩 국회를 보이콧하고, 고의로 법안 처리를 저해하고, 법안·정책을 다발로 묶어 사물(私物)처럼 거래하므로 어떤 법안이 어떤 모양으로 언제 통과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시스템 대신 ‘인간의 변덕’이 의회를 지배하고, 국가·국민·기업은 멍들지만 국회의원의 위력은 오히려 커지는 모순적 현실이 등장하는 것이다.

원래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므로 그 도입과 방치의 책임도 국회의원에게 귀속돼야 마땅하다. 본시 소수 야당은 자신에게 횡재를 안기는 제도를 마다할 리 없다. 따라서 모든 책임은 다수당이면서 국회선진화법을 만들고 자축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너무나 명백한 국회선진화법의 해독(害毒)을 그간 파악했다면 집권당으로서 당장 이를 폐지할 방법을 찾았어야 옳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도 늘어나는 인위적 입법 권력에 취했는지 법 폐지에 소극적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회가 자율적으로 빠진 선진화법의 함정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할 수 없다.

국회가 이렇게 무능에 빠진 데 반해 국회의원의 지위와 특권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된 바다. 한국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연봉·수당·특권을 정한다. 그간 200가지가 넘는다는 특별대우가 만들어지고 온갖 행태의 도덕적 해이가 저질러졌다. 이들에게는 공천받는 일만이 중대사이고, 국민 대의자(代議者)로서 직업윤리는 땅에 떨어졌다. 이렇게 쌓인 특권이 아마도 국회의원들에게 세계가 그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계급의식을 키우게 했는지 모를 일이다.

향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에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시키려면 우선 그들부터 국민 수준으로 내려오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회기의 대부분을 보이콧하거나 장외투쟁하고 국회 표결 참여율이 20~30%인 국회의원들에게는 국민들과 똑같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법안을 모두 정치적 거래로 처리하고, 하룻밤에 무더기로 합의해 처리하는 국회의원들에게 9명의 보좌관 또한 무슨 필요가 있는가. 우리도 스웨덴처럼 국회의원 보좌관을 당에서 공동으로 제공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기회에 큰 비용이 드는 현재의 국회의원 대신 회기 중 회의비와 특별수당만 지급하는 선출된 명예직 국회의원제도도 고려해 볼 만하다. 거대한 대우를 없애면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정상적인 교양·애국심·사명감을 가진 존경할 인물들이 국민대표가 될 기회도 커질 수 있다. 오랫동안 언론·지식인들은 국회의원의 특권에 대한 비판만 해왔는데, 이제부터는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 방안을 구상·토론·홍보하고 국민의 힘을 집결시킬 실질적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