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포스트 2020 신(新)기후체제’와 관련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느닷없이 37%로 올려 충격을 주고 있다. 앞서 제시한 203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8억5060만t을 기준으로 한 네 가지 감축 시나리오(14.7~31.3%)보다 크게 높아진 목표치다. 네 가지 시나리오조차 부담으로 느꼈던 산업계로서는 핵폭탄을 맞은 격이다. 현 정부 스스로도 과도하다고 판단한 이명박 정부의 2020년 BAU 대비 30% 감축목표보다 높은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정부는 국제적 책임을 내세웠지만 이는 네 가지 시나리오 발표 때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지킬 수 없는 국제적 약속보다 산업계 현실을 감안하겠다는 기조와는 정반대로 가고 말았다. 현재의 산업구조와 감축 기술까지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에너지, 철강은 말할 것도 없고 제조업 전반의 심대한 타격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기업이 해외로 속속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감축부담을 더 늘린 것은 경제성장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2% 이하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하고, 발전·수송·건물 등 추가적 감축 여력의 확보 및 온실가스 감축 기술개발 등을 중점 지원하겠다지만 온 국가를 ‘녹색성장’으로 몰아갔던 이명박 정부도 못한 일이다. 가능했으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더구나 원전 추가 건설을 고려하겠다는데 이미 계획 중인 원전을 둘러싼 갈등조차 제대로 해결 못 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정부는 감축목표를 상향 조정한 이유로 국제적 책임을 들먹이지만 왜 한국만 그래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감축목표 후퇴방지 원칙도 그렇다. 선진국 등 의무감축국들도 실리에 따라 후퇴한 경우가 많다. 각국이 포스트 2020 감축목표를 잇달아 제시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달성가능한 수준을 택하고 있다. 자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주면서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내건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경제를 망가뜨리고 온실가스 감축을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