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작가가 찍은 ‘제주의 오름’.
김영갑 작가가 찍은 ‘제주의 오름’.
‘삶과 사진을 바꾼 예술가.’ 사람들은 10년 전 세상을 뜬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을 그렇게 기억한다. 길지 않은 삶을 온통 제주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데에 바쳤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던 그의 작품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김영갑, 십 년 만의 나들이-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전이다. 작가 사후 10년 만에 제주 밖에서 열리는 첫 대형 전시다. 제주에 정착할 무렵 찍은 초기작부터 그의 대표작인 컬러 파노라마 사진 등 70여점이 걸렸다.

김영갑은 1982년 제주에 처음 발을 디뎠다. 25세 청년의 눈으로 본 제주에는 끈질긴 생명력과 평온함을 관통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을 찾으려 서울과 제주를 오가다 28세에 아예 혼자서 섬에 정착했다. '이어도 신화'에 나온 제주의 속살을 포착해 보이겠다며 섬 곳곳을 누볐다.

매일같이 섬 어딘가로 풍경을 찾아 나섰지만 매번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종종 온몸으로 제주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 있곤 했다. 바람을 느끼고 이해하지 않으면 제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은 곳에서는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한참을 기다렸다. 빛과 바람이 맞아떨어져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순간이 올 때 셔터를 눌렀다. 그의 작품들은 그렇게 하나씩 모은 황홀한 순간의 기록이다.

렌즈에 바람을 담아온 지 15년, 매서운 바람이 불면 바위에 몸을 묶어서라도 사진을 찍던 그에게 ‘A급 태풍’이 왔다.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었다. 뼈가 굳고 근육이 퇴화해 거동이 힘든 와중에도 사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남제주군 성산읍에 있는 버려진 초등학교를 사진 갤러리로 만들고 한라산의 옛 이름을 붙였다. 그가 남긴 20여만장의 필름을 소장 중인 두모악 갤러리다.

그의 사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우뚝한 오름의 부드러운 능선, 나무 그림자, 억새, 들판과 바람이 주인공이다. 같은 곳에서도 날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관조하듯 그대로 담았다. 간결한 수평구도의 파노라마 사진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꽉 차 있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았고, 앞으로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풍경이다. 김영갑이 평생을 찾고자 한 상상 속 이어도의 모습일지 모른다. 9월28일까지. (02)737-2505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