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1978년 제작된 영화 ‘투쟁의 날들’은 1930년대 중반 이후 미국 트럭기사 노조가 노동자의 권익을 어떻게 쟁취해갔는지 잘 보여준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연기한 주인공 자니 코벡은 클리블랜드 지역의 노조원 모집인으로 출발해 트럭기사 노조 302지부장을 거쳐 전국 의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노조의 과도한 임금투쟁이 노동가격 왜곡…'비정규직·청년실업' 부메랑으로 돌아와
코벡은 지부장 시절 폭력을 동반한 파업을 통해 시간외수당 지급, 적절한 임금인상, 사고보험 가입 등의 요구를 관철했다. 당시만 해도 물류회사는 14시간을 일해도 8시간의 임금밖에 지급하지 않았고, 임금은 거의 인상하지 않았으며, 사고가 나면 처리비용을 트럭기사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코벡은 폭력조직과 손잡고 이권에 개입했고, 이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뇌물을 챙겼으며, 지부장 시절 파업 시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미국 상원 청문회에 서기도 했다. 결국 영화는 가족을 포함한 코벡의 암살로 끝이 난다.

영화를 볼 때 생기는 의문은 적지 않다. 왜 그렇게 당시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열악했는가. 혹시 사용자의 착취가 있었는가. 법원을 포함한 정부의 노동운동에 대한 원칙은 무엇인가. 사회주의가 미국 노동운동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노동운동의 주류는 정치 또는 이념을 배격하고 노동조건에만 국한하는 ‘생계를 위한 노조주의’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노조운동은 정치 또는 이념에 지배되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서는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인 임금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의문은 과연 노조가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 즉 자유시장 임금을 인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헌법에 의해 노동3권을 보장받는 노조는 사용자와 협상해 임금을 결정한다. 이것을 ‘제한주의적 임금’ 또는 ‘제한주의적 가격’이라고 한다. 정부가 결정하는 규제가격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유시장 임금도 아니다. 제한주의적 임금은 언제나 자유시장 임금보다 높다. 그렇지 않다면 파업할 이유가 없다. 제한주의적 임금은 사용자와 노조의 협상능력에 달려 있다. 그리고 협상능력은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제한주의적 임금이 자유시장 임금보다 얼마나 많을 것인가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특히 노조의 협상력은 노조가 제시한 협상안에 대한 노조원의 지지도, 파업의 강도와 지속성 등에 좌우된다. 그러나 일단 노조가 존재하면 현실에서 자유시장 임금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시장 임금과 협상으로 결정된 임금의 차이가 얼마인지를 알 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 존재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제한주의적 임금과 자유시장 임금의 차이는 어디에서 또는 누구로부터 오는가. 임금이 상승하면 기업가는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를 해고할 수밖에 없다. 또는 기업이나 산업이 성장하는 경우에 늘어나야 할 일자리를 신규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높은 노동비용 문제를 해결한다.

노조의 과도한 임금투쟁이 노동가격 왜곡…'비정규직·청년실업' 부메랑으로 돌아와
결국 제한주의적 임금과 자유시장 임금의 차이는 해고되는 노동자의 희생에서 온 것이다. 자유시장 임금보다 제한주의적 임금이 높기 때문에 노동의 공급이 노동수요보다 크다. 이런 상태가 바로 대기업 입사를 바라는 청년세대의 ‘구직난(求職難)’이다. 이것이 대기업에만 나타나는 것은 현재 한국에는 대기업에만 노조가 있기 때문이다.

해고된 노동자 또는 처음부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동자는 관련 중소기업(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부품회사)에 취업하거나, 실업자가 되거나, 자영업자가 된다. 해고 노동자가 관련 부품회사에 취직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 부품회사 임금은 중소기업의 자유시장 임금(대기업의 자유시장 임금이 아닌)보다 낮아진다(물론 자유시장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은 차이가 난다).

2014년 현재 중소기업 평균임금은 대기업 평균임금의 약 52%다. 2009년 약 58%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대기업 평균임금은 노조가 없는 대기업의 임금도 포함하고 있어 두 임금의 차이가 모두 노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임금의 차이는 상당 부분 대기업 노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중소기업에서 ‘구인난(求人難)’이 발생하는 것은 대기업 노조의 제한주의적 임금 때문인 것도 분명하다. 기업으로서는 이미 설치된 기계, 설비 등의 가동률을 높이는 게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소위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의 대부분은 대기업 노조의 제한주의적 임금 때문이다. 혹자는 노조가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988년 이후 대기업, 공공부문, 일부 산업 노조 등에서 제한주의적 임금은 자유시장 임금보다 언제나 높았다. 약 한 세대 동안에 둘 간의 차이가 누적됐다고 생각해보라.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노조 자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대 노총과 같은 상급 노조단체는 노조가 노동자를 위한 조직임을 끊임없이 선전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국민이 믿게 되면 그 폐해를 줄일 수 없다. SK하이닉스 노조가 협력사와 ‘임금공유제’를 시행하겠다는 것을 ‘통 큰 양보’로 표현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한마디로 노동조합이 자유시장 임금을 올릴 수는 없다. 자유시장 임금은 노동자의 노력에 대한 대가다. 그러나 제한주의적 임금은 한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의 임금을 이전한(정확하게는 ‘약탈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조가 임금 협상 과정에서 사용자에게서 양보를 얻어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그리고 노조의 임금인상이 주주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지만 다른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다.

■ 정규직 일자리까지 줄인 노조의 ‘자승자박’

2014년 3월 현재 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은 각각 67.9%, 32.1%다.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전체 근로자의 약 3분의 1이다. 그만큼 노동자의 고용 불안이 작지 않음을 의미한다.

일부 노동문제 전문가는 이런 상황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전문가는 청년실업의 심각성, 남녀의 심각한 임금격차 등을 추가해 노동시장이 ‘다중구조’로 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노동시장이 구조적으로 분리돼 있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발생하는 이유를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생활방식과 산업구조의 변화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다.

전업주부는 정규직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24시간 근무하는 유통업체도 일부 일자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원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택한 경우다. 그들이 비정규직을 선택한 것은 정규직 일자리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하게 된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다. 노조에 의한 제한주의적 임금은 정규직 일자리 수를 줄이고 기업은 자유시장 임금보다 높은 임금에 의한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비정규직 문제의 미봉책일 뿐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기업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외부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다음 기회 또는 세대에 비정규직 일자리의 수를 더 늘릴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밑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일 뿐이다.

전용덕 <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