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후원사와 '내 팀' 가치 공유…자생력 갖춰야 100년 명문구단"
“야구단은 특출한 경영자나 명장, 스타선수 등 어느 한 명의 힘으론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공동운명체’입니다. 팬과 지역민, 후원사 등 팀을 둘러싼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야구’라는 콘텐츠 안에서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만 지속적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조태룡 넥센히어로즈 단장(51·사진)은 ‘공동운명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속가능한 야구단의 성격을 그만큼 확실하게 함축하는 단어를 그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다. 공동운명체 구성원 중 후원사의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 17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만난 그가 인터뷰 도중 가장 많이 쓴 단어 역시 ‘후원사’였다. 조 단장은 한국형 프로 스포츠 구단의 성공 조건으로 ‘자생력을 갖춘 산업적 시스템 완성’을 가장 먼저 꼽았다.

금융인 출신인 그는 2008년 창단 첫해부터 히어로즈 단장을 맡아 회사 대표인 ‘이장석호(號)’의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태생적 약점을 지닌 국내 프로구단의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식 세일즈 마케팅인 후원사 영입 전략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조 단장이다. ‘히어로즈 신화’의 숨은 조력자이자 국내 프로스포츠계의 대표적인 혁신형 인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는 이 같은 공로로 2013년 한국스포츠산업협회로부터 공로패를, 지난해엔 프로야구 OB 모임인 ‘일구회’가 주최하는 연말 시상식에서 ‘최우수 프런트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세일즈맨’에 비유했다. 좋은 선수가 감동적인 경기를 만들고 효과를 본 후원사 덕에 구단 재원도 튼튼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구단 마케팅이 강해야 선수와 팬, 후원사 간의 가교 역할을 통해 양질의 관람 상품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좋은 세일즈맨이 되기 위해선 ‘why(왜)’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져야 한다고 그는 직원들에게 늘 강조한다. 조 단장은 “나는 왜 여기에 있고, 우리는 왜 야구를 하며, 그들은 왜 우리 경기에 환호하는가라는 질문 속에 우리 팀을 후원하려는 기업들의 속마음과 정답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창단 초기에는 ‘선수 팔아 곳간 채운다’는 비난도 받았던 그다. 조 단장은 “야구에 선진 경영을 도입해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는 본질을 이해해 주지 않는 분위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자생력을 갖춰야만 100년을 넘어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명문 구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팬과 지방자치단체, 후원기업이 함께 만들어가는 구단만이 자체 가치만으로도 홀로 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히어로즈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는 그래서 뚜렷하다. ‘내 팀’이라고 믿는 견고한 인식이다. 그는 “이기는 경기, 매 시즌 우승은 팬들이 바라는 최고의 가치지만 운영자금을 빌리고 월급까지 못 주면서 구단 운영의 모든 초점을 ‘우승’에만 두는 미련한 구단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미 그들에겐 우승보다 값진 ‘내 팀’이라는 공동의 가치가 녹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조 단장은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이른바 국내 4대 프로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종목의 프로구단 가운데 최근 직원들 급여도 주지 못하는 팀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며 “그런데 아직도 프로구단이 돈벌이에 치우치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면 팬들은 물론 동업자조차도 어색해하는 경향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구단이 추구하는 시스템 경영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조 단장은 “미국형 ‘프런트 야구’와 일본식 ‘감독 야구’에 대한 시각이 분분하다”며 “중요한 건 합리적 판단을 위해서는 전문성을 충분히 살리되 시스템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성적을 내기 위한 선수단 운영과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구단 경영 가운데 어느 한 쪽에만 중심축을 둔다고 구단의 경쟁력이 높아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선수 자산에 대한 믿음도 강했다. 조 단장은 “유망주를 발굴해 4~5년간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 선수 개인은 물론 구단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핵심 자산으로 키울 수 있다”며 “재목감을 육성하고 더 큰 시장으로 진출시키는 일은 야구산업 전체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히어로즈는 최근 1~2년 사이 신인 드래프트 성과물이 10개 구단 중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에서 앞으로 확실한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 구단이 혁신적인 사업과 선진 경영 시스템에 집중하는 이면엔 단기 이익과 성과에 취하지 말자는 뜻이 내포돼 있어요. 적자를 보더라도 10년 후를 보고 팬과 시민에게 즐거움과 행복감을 선사해야만 공동의 가치를 함께 높여갈 수 있거든요. 달라지는 모습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세요.”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