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한달…늘어나는 은둔족·예방족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39)는 요즘 하루 세 번씩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열흘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매일 비타민C를 복용하라’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예방 수칙’을 접한 뒤부터다. 지난 주말엔 홍삼 등 건강보조제품도 인터넷에서 구매했다. 감기약 해열제 등 상비약은 이달 초 진작에 사놓았다.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인 병원에는 웬만해선 가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주말 나들이는 당분간 자제하기로 했다. 외식도 마찬가지다. 지난 주말에도 가족과 집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가끔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는다.

'메르스 사태' 한달…늘어나는 은둔족·예방족
‘메르스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김씨 같은 ‘은둔·예방형’ 소비자가 늘고 있다. 메르스 걱정이 일상으로 파고들면서 나타난 변화다. 전반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지만 비타민과 상비약 등은 ‘메르스 특수’를 누리고 있다.

비타민은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에서 더 잘 팔린다. G마켓에선 이달 들어 15일까지 전체 비타민 제품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1% 급증했다. 롯데마트에선 같은 기간 48% 늘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면역력 개선에 좋다고 알려진 제품들도 덩달아 잘 팔리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오렌지(279%↑), 마늘(83%↑), 고구마(28%↑) 등이다. 따뜻한 날씨에도 감기약 같은 가정 상비약 매출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선 이달 1~15일 감기약과 해열제 등 가정 상비약 매출이 16% 늘었다. 편의점 CU에서도 같은 기간 매출이 12% 증가했다.

이 같은 몇몇 특수 품목을 빼고는 소비가 급감했다. 외식이 줄어들어 식당 자영업자의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8~14일 560개 외식업체의 평균 매출은 2주 전보다 38.5% 급감했다.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객도 가파르게 줄었다. 서울 대중교통 이용객은 일요일인 14일 569만8000명을 기록했다. 메르스 우려가 높아지기 시작한 지난달 31일(일요일)에 비해서도 21.9%(159만9000명) 감소했다. 버스 승객은 80만7000명(20.5%), 지하철 승객은 79만2000명(23.6%) 줄었다. 출퇴근과 등하교 수요가 있는 평일에는 감소폭이 그나마 덜했다. 월요일인 15일 대중교통 이용객은 14.4% 감소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평일보다는 주말에, 출·퇴근시간보다는 낮·저녁시간에 승객이 많이 줄었다”며 “승객들이 메르스를 걱정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메르스는 일상만 바꿔놓은 것이 아니다. 기업들의 영업 풍속도도 달라지고 있다. 금융회사에선 고객을 발로 찾아가는 ‘아웃바운드(outbound)’ 영업이 크게 위축됐다. 반면 온라인거래 같은 비대면(非對面) 거래는 늘고 있다. 이달 11일까지 5대 시중은행의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 이체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4% 급증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규 거래를 트기 위한 미팅이 거의 취소돼 영업에 지장이 많다”며 “대출 등 대면거래가 꼭 필요한 경우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지역의 지점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고객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