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ODA 상생모델 될 니카라과 ICT 협력
한국은 광복 후 55년간 약 127억달러의 원조를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경제를 일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가 됐고, 2010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 참혹한 전쟁 폐허를 딛고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념비적인 일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여전히 무역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수출을 늘리고, 기업의 해외 진출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개발도상국과의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부산에서 열린 미주개발은행(IDB) 총회는 한국이 중남미 시장에 11억달러를 지원하는 ‘한·중남미 개발협력 플랜’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니카라과의 통신우편부 장관은 양국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이는 중남미 시장에 대한 한국의 진출의지를 적극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중남미 지역에 한국의 앞선 ICT를 지원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구 600만명의 작은 나라인 니카라과에서는 한국수출입은행과 IDB가 공동으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활용해 1억달러 규모의 광통신 브로드밴드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에는 ODA의 대부분을 국내 기업이 수주하기 쉬운 ‘구속성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이번 사업은 ‘비(非)구속성’, 즉 국내 기업 수주 조건이 없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이 ICT 분야의 최초 사례이며 앞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ODA를 진행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럼 이번 니카라과 브로드밴드 사업을 통해 한국 정부와 기업이 고민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첫째, 비구속성 입찰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국내 기업의 수주를 보장하지 않는 최초의 공개경쟁인 만큼 공정함과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은 자신의 강점을 알리고, 담합·로비·향응과 같은 불미스러운 수단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거나 사업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수혜국에 지속적이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저가 수주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를 원조 수혜국으로 공략하면서 현지 종업원에 대한 인권침해, 부실 공사 등을 양산했고, 결과적으로 현지 산업을 황폐화시켰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니카라과 현지 사정을 정확히 알고, 동반자 인식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이번 사업을 국내 ICT 기업의 해외진출을 돕는 마중물로 발전시켜야 한다. 국내 ICT 시장의 생태계는 포화상태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시장 개척이 필요하다. 신시장 진출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대·중·소 기업의 동반 해외진출이다.

1970년대에 건설업을 중심으로 정부가 진두지휘한 중동 진출은 한국 근대화의 초석이 됐다. 덤핑 입찰, 상호비방 등의 부작용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나 한국 경제에 실익을 안겨줬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중동 진출의 성공과 비교해 볼 때, 2015년 ‘중남미 진출 수레’는 누가 어떻게 끌어야 할까. 정부는 수레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대기업은 앞에서 끌며, 관련 협회 및 ICT 생태계 참여자는 뒤에서 밀어주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이 수레 위에 해외 시장개척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기업을 얹어 함께 나아간다면, 가장 이상적인 해외진출 모델이 될 것이다.

김승건 <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