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메르스…대한민국 어디로 가고 있나
불확실한 정보로 화 키워
환자는 숨기고, 병원은 감추고…초기대응 실패 ‘세월호’ 판박이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땠나
정부 ‘컨트롤타워’ 없이 우왕좌왕…정치권, 소통보다 갈등·분열 조장
‘나 하나쯤이야’ 시민의식도 실종

평정심 찾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완치자·퇴원자 갈수록 늘어…77세 할머니도 환자복 벗었다
모두의 힘 모아 난국 이겨내야


아! 메르스…대한민국 어디로 가고 있나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전격 연기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여론을 감안해 외교적 결례를 무릅썼다. 그만큼 사태가 엄중하고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또 있을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신문 방송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온통 잠식하며 대한민국을 점령했다. 바람도 없는 폭염의 거리를 삽시간에 마스크로 뒤덮어 버렸다. 동물원에나 몇 마리 있는 낙타가 일으킨 ‘모래먼지’가 온 나라에 자욱하다. ‘성완종 리스트’도, 공무원연금도, 국회법도,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도 이 먼지 폭풍에 가려지고 지워졌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걸까.

인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다. 유사 이래 전쟁이 앗아간 목숨보다 전염병으로 숨진 생명이 훨씬 더 많았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꽃피운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도 스파르타의 공격에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전 시민을 성안으로 끌어들여 대항하다가 창검보다 강한 복병인 역병(疫病)을 만나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페리클레스 자신도 이 괴질에 걸려 생을 마감했다. 전쟁보다 무서운 게 바로 전염병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최첨단 현대의학으로도 신종 감염질환에서 아직 인류를 완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바이러스 변이를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지금 메르스로 인한 대한민국의 혼란과 불안은 정상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메르스가 우리 사회와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갈 기세다.

방역망은 일찌감치 무너졌다. 정부가 과도하게 쌓은 바리케이드 때문에 더 쉽게, 더 빨리 허물어졌다.

부족하고 불확실한 정보는 불안과 공포를 유발한다. 무슨 군사작전처럼 숫자·기호로 환자와 병원을 암호화해 루머를 양산했다. 환자는 숨기고 의사는 모르고 병원은 감추기 바빴다. 그 바람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치유소·보호막이 돼야 할 병원이 오히려 감염소·전파원이 되고 말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하며 대한민국을 메르스 오염국으로 추락시켜버렸다.

병원 공개를 하지 않고 비밀주의로 나가려면 나름대로 원칙과 의지가 있어야 하건만 공개를 꺼린 이유가 불분명한 데다 비밀을 지켜낼 능력과 조직도 안 돼 있었다. 또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포함한 언론의 협조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것은 실패가 예고된 전략이었다. 오류투성이 병원 리스트는 그 결정판이었다. 치밀성·체계성·정확성 등 디지털 시대 마인드가 부족했고, 하드웨어는 번듯한데 소프트웨어 운용 수준은 그에 못 미친다는 사실이 아울러 탄로 났다.

월호 사건으로 국제적 망신을 산 게 불과 1년 전이건만 메르스 사태로 우리는 또다시 부끄러운 민낯을 세상천지에 드러내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랄까.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세월호 판박이다. 이번에도 확실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골든타임을 또 놓쳤다. 초기 대응에 실패했으면 2차, 3차 단계에서라도 사태를 장악했어야 하는데 불신과 불안만 가중시켰다. 위기를 관리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인물이 내각에 없다. 모두가 대통령 입만 쳐다보고 눈치만 살피는 듯하다. 대통령이 전지전능자라도 된단 말인가. 뒤늦게 가동한 컨트롤타워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개념조차 명확하게 서 있지 않은 것 같다.

새로 생긴 국민안전처는 역시나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국민) 안전과 (국가) 안보는 구분이 모호하니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나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역할도 모호하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한 3개 본부가 보고와 회의로 금쪽같은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공무원과 관료들의 미루기, 떠넘기기 악습도 여전한 듯하다. 딱하기는 야당도 마찬가지. 국민의 감동과 지지를 이끌어낼 이 좋은 기회를 또 한 번 걷어차려 하고 있다. 감정에 편승해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것은 하수의 정치력이다. 수권 정당의 가능성은 위기 때 판가름 나는 법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과 대권 주자의 발언은 정치 마케팅으로 비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불신의 벽과 갈등의 골은 점점 더 높아지고 깊어간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와 개인의 책임을 구분짓는 경계가 더욱 모호해졌다. 개인 책임도 국가 책임으로 귀결되는 분위기랄까. 오랜 중앙집권적 인습 탓에 개인과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가치가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공동체 교육 훈련은 전혀 안 되고, 여기에 잦은 선거로 인한 포퓰리즘 등이 합세해 극도의 이기주의와 책임지지 않는 풍조를 낳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그 반사경이다. 병력(病歷)을 숨긴 채 병원을 도는 등 나만 생각하고 남을 고려하지 않은 결여된 공동체 의식이 파문과 파장을 키웠다. 책임 있는 민주 시민의식과 가치 회복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울 강남에 있는 유수의 대학병원 세 곳마저 메르스에 구멍이 뚫렸다. 병원 의료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구조적 점검 및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는 경종이다. 병원 위생 상태나 환자 수진 등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닌 것 같다. 10대 청소년과 경찰관, 만삭의 임신부도 확진환자가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책과 메시지를 남발하고 있다. 발병 초기이긴 했지만 교육부의 ‘낙타고기 파문’이 그 좋은 예다. 담당 공무원이나 책임자가 조금만 신중했더라도 조롱과 야유 세례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로 불려가 혼쭐나는 관계장관들을 보면서 문득 펠로폰네소스 전쟁 마지막 국면이 떠오른다. 아테네군은 스파르타군을 상대로 사력을 다해 싸워 승리를 거두지만 아테네 민회는 전사자 수습을 등한시했다는 이유로 승전한 장군을 모두 법정에 세워 처형했다. 본말이 뒤집힌 이 판결로 리더십(지휘관)을 잃은 아테네는 그 이듬해 전투에서 참패하고 결국 멸망한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일이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건이 터지면 사람부터 갈고 해당 부처부터 뜯어고치고 보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진다. 문책은 사태 수습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애초에 인사를 제대로 하고 일단 뽑은 인재라면 믿고 키워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역량을 쌓으면서 소신껏 일하게 된다.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워드는 역시 리더십이다. 똑같은 재난을 앞에 두고 대처법이 달랐던 미국의 두 대통령을 예로 들어보자.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했을 때 사흘이 지나서야 현장을 방문해 뉴올리언스를 폭력과 강탈이 난무하는 무법천지로 만든 조지 부시는 그 후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반면에 버락 오바마는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발생하자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진두지휘에 나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또 지난해 9월에도 에볼라에 감염됐다 완치된 간호사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포옹과 키스를 함으로써 미국 시민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리더십을 연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몇 차례 사건을 통해 위기극복 리더십에 한계를 보였다. 강점이었던 신뢰가 무너지고 소통 능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후쿠시마원전 사태를 국민 단합과 지지율 상승의 지렛대로 삼았듯이 이번에야말로 박 대통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금 모으기로 외환위기를 넘기고, 자원봉사 행렬로 태안 해변 오염을 정화한 우리 국민 아닌가. 잠재된 그 에너지를 결집하고 분출해내는 것은 리더의 자세와 태도에 달려 있다. 솔선수범과 진정성, 모성애적 포용력을 아우르는 변화된 리더십의 발휘가 절실한 때다.

메르스는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을 뿐 불치병이 아니다. 전파력과 치사율도 다른 전염병보다 높지 않으며 국내 의료 수준은 최상급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온 국민이 일상생활까지 포기할 만큼 과민반응을 보이는 걸까. 세계보건기구(WHO) 평가단의 수업 재개 권고에도 불구하고 휴업이나 휴교를 하는 학교는 오히려 늘고 있다. 심지어 부산국제크루즈박람회는 개막(10일) 하루 전에 전격 취소돼 크루즈선을 타고 온 관광객 수천명이 배에서 머물다 다시 출항하는 혼선을 빚었다. 부산은 아직 발병 환자가 한 명뿐인데도 말이다.

방심도 금물이지만 더 큰 문제는 지나친 공포감이다. 과잉 보도, 그리고 이성을 잃은 감정적이고 비과학적인 접근은 패닉이나 아노미 현상까지 불러일으킨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떠밀려가고 있다. 전염병에 대처하는 합리적 태도를 상실했다.

말이지 정상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수학여행을 속속 취소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미국 서부 명문고(하버드 웨스트레이크) 교사 20명은 12일간의 한국 역사문화 탐방을 위해 11일 인천공항에 내렸다. 방한기간 중 국내외 동문 모임도 할 예정이다. 전문가와 상의한 결과 확진환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 감염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말했듯이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막연한 불안감, 불필요한 공포심을 걷어내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 굿 뉴스, 희망의 메시지 전달에 신경 쓰는 모습이 아름답다. 격리자, 확진환자, 사망자만 늘고 있는 게 아니다. 격리 해제자, 완치자, 퇴원자 수도 늘고 있다. 천식을 앓는 77세 할머니도 메르스를 물리치고 환자복을 벗었다.

진정이냐, 확산이냐. 대한민국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 하기 나름이며 꼭 해내야 한다. 지도층의 리더십에만 기댈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리더십과 책임의식으로 이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 공동체 정신을 회복함으로써 개인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너무 얼렁뚱땅 살아왔음을 반성도 하면서…. 무엇보다 내 안에, 우리 안에 웅크리고 있는 ‘메르스’란 이름의 악령을 내쫓아야 한다. 과대포장을 벗기고 그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대통령, 정부, 의료진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주어졌다. 이 시련을 하늘의 경고로 여겨 다함께 반성하고 힘을 모아 헤쳐나가고 거듭 태어나는 계기로 삼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하루빨리 평정심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 메르스를 이겨내는 길이다. 지난 세월호 사고 때처럼 구조·구호 활동하는 이들이 불의의 희생을 겪는 일이 이번엔 제발 없도록 해야 한다. 혼신의 힘으로 치료와 간호에 임하는 의료진에게 감사하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할 때다.

■ 김형오 객원大기자는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경남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기자 △대통령 비서실 △14~18대 국회의원(부산 영도)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국회의장 △부산대 석좌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