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7일 오후 4시45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9.98%)에 “합병 비율을 공정하지 않게 책정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반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식 서한을 보냈다. 삼성SDI(7.39%), 삼성화재(4.79%) 등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한 삼성계열사에도 동일한 문서를 보냈다. 엘리엇이 삼성 측에서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은 향후 소송 등 삼성그룹 전체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기에 앞서 법적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단독] 엘리엇, 삼성SDI·화재에도 서한…"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 문제있다"
7일 삼성그룹과 국민연금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 5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며 위법 소지가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삼성물산 주요 주주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입했다고 공개한 직후 5일 삼성물산에 현물배당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서를 보낸 것과 동시에 이뤄진 것이다.

엘리엇은 이 서한에서 “국내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현재 시가 19만7000원 수준인 제일모직의 실제 기업가치가 7만원 안팎에 그치는 반면 삼성물산(시가 7만6100원)의 가치는 10만원이 넘는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제일모직 주가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 수혜주로 인식돼 고평가된 반면 삼성물산은 실제 가치보다 저평가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보다 3배가량 높게 산정된 합병 비율(1 대 0.35)이 불공정하다는 게 엘리엇 측 주장이다. 엘리엇은 또 합병으로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가 만들어질 경우 공정거래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으며 합병 후 삼성물산의 건설사업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삼성 측은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간별 시가의 가중 평균치를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신규 순환출자 고리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6개월 이내에 해소할 수 있으며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로 건설사업은 오히려 확대될 것”이라고 맞섰다. 삼일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같은 회계법인 내에서도 기업 가치를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라며 “상장사의 경우 시가를 합병 비율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률적 문제와 별개로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일모직에 비해 손해를 본다는 판단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단기 차익보다는 향후 법적 대응까지 고려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엘리엇 측 문건을 본 한 관계자는 “엘리엇 측이 국내외 법무법인을 통해 자본시장, 금산분리, 공정거래 등 관련법과 규제를 꼼꼼하게 살핀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삼성물산 주주인 삼성 계열사들에 합병 반대를 요구한 것이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다. 삼성 관계자는 “내용을 보고 황당했다”며 “엘리엇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법률팀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엇 측의 제안을 받은 국민연금은 이번 사태가 정치 쟁점화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특정 대기업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 이익을 훼손해서 안 된다”(새정치민주연합)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서다. 연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하면 주가가 급락할 수 있다”며 “현 주가가 유지될 경우 엘리엇에 동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좌동욱/이유정/임도원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