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으로 미국 간 인도 청년, 구글 입사 7년 만에 연봉 630억…소프트뱅크 합류 7개월 만에 '넘버 1 후계자'로 발돋움
일본 이동통신회사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58·일본명 손 마사요시) 최고경영자(CEO) 겸 사장은 지난 11일 도쿄에서 3월 결산 기자회견을 갖고 깜짝 발표를 했다. 그는 세계 최대 인터넷회사 구글 출신의 니케시 아로라(48)를 회사의 2인자인 최고운영자(COO) 겸 부사장으로 임명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다고 선언했다. 구글의 ‘넘버4(수석 부사장)’로 5710만달러(약 631억원)의 연봉을 받았던 아로라를 소프트뱅크의 인터넷·모바일사업 부문 CEO로 영입한 지 7개월 만의 결정이었다.

손 사장은 기자들에게 “아로라의 일본어 직함은 부사장이지만 영어로는 사장(president)”이라며 “어떤 언어로든 소프트뱅크에서 사장이라는 직함을 갖게 된 사람은 아로라가 유일하다”고 치켜세웠다. 21일에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야후재팬 회장직을 아로라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향후 300년간의 사업계획을 갖고 있다는 일본 재계의 ‘거물’ 손 사장은 아로라의 어떤 매력에 빠져든 것일까.

탄탄한 이론과 다양한 경험 갖춰

아로라 부사장은 인도의 수도 뉴델리 인근 가지아바드시(市)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군에서 근무해 인도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학교(켄드리야 비드야라야)를 다녔다. 대학은 인도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몰려든다는 인도공과대(IIT)를 나왔다. 바라나시 캠퍼스(바나라스힌두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정보기술(IT) 컨설팅·아웃소싱 업체인 와이프로에서 잠시 컴퓨터를 팔다가 21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경영학을 공부해 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가방 두 개와 단 돈 100달러를 손에 쥐고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해 가을 소프트뱅크가 아로라를 데려오며 극찬했던 경력의 실질적 출발점이었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보도자료를 통해 “다양한 능력을 고루 갖춘 보기 드문 인재로 전략과 재무에 놀라운 감각을 갖췄고 이동통신산업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며 “우리 회사를 다음 단계로 성장시킬 자질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아로라는 자신의 계획대로 미국 보스턴 노스이스턴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 칼리지에서는 금융학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국제재무분석사(CFA) 자격도 얻었다. 그는 1992년부터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와 푸트남 인베스트에서 애널리스트로 7년간 일하며 통신산업의 안팎을 속속들이 파악하게 됐다.

하지만 그에게 애널리스트는 재미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는 ‘따분했다’고 털어놨다. 2000년 6월 3세대(3G) 통신망을 이용해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T모션PLC를 설립한 이유다. T모션PLC는 2년 뒤 도이치텔레콤의 T모바일과 합병했는 데 아로라는 T모바일의 국제영업 분야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참여하며 다양한 현장경험까지 겸비할 수 있었다.

구글의 유럽사업 키우며 매출 8배 늘려

맨몸으로 미국 간 인도 청년, 구글 입사 7년 만에 연봉 630억…소프트뱅크 합류 7개월 만에 '넘버 1 후계자'로 발돋움
구글과 인연은 2004년 9월에 시작됐다. 구글은 그 해 8월 기업공개(IPO)를 하고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영국 대영박물관의 예술품에 둘러싸여 아로라와 인터뷰를 했다. 그들은 재무지식과 현장경험을 두루 갖춘 아로라에게 매력을 느꼈고 유럽 사업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아로라는 새로운 IT 벤처기업을 세워볼까 고민하다가 ‘구글호(號)’의 미래를 높이 평가하고 마침내 승선을 결정했다.

그는 유럽법인 대표를 맡은 뒤 유럽의 여러 영업조직을 하나로 묶었다. 이렇게 모은 힘으로 시장 영향력을 확대했고 검색광고 서비스를 크게 키웠다. 그는 성과를 인정받아 유럽과 함께 중동과 아프리카(EMEA) 전체를 총괄하게 됐다. 아로라가 EMEA를 담당한 4년간 10억달러도 안 됐던 매출이 80억달러로 늘어났다. 15개 나라에서 신규 영업을 시작했고 임직원은 1000여명에서 3000여명으로 불어났다. 그의 경영실적은 경영학자들의 연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EMEA에서 승승장구했던 아로라는 2011년 구글의 최고영업책임자(CBO)를 맡았고 수석 부사장까지 올랐다. 두 명의 구글 창업자와 에릭 슈미트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아로라는 CBO 기간에 모바일과 데스크톱을 꿰뚫는 온라인 광고시장을 개척했다. 태블릿PC와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서 온라인 쇼핑을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이다. 새로운 모델을 도입하면서 구글의 순매출은 25% 증가했고 아로라의 연봉은 571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소프트뱅크의 글로벌 전략 ‘진두지휘’

아로라는 소프트뱅크로 옮기면서 인터넷사업과 관련한 전략적 투자를 책임지고 있다.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강조하며 ‘제2 스테이지로 돌입’을 선언한 소프트뱅크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아로라는 이직 7개월 만에 아시아에 있는 6개 인터넷 회사에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전자상거래와 공유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업체들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인도 온라인 소매업체 스냅딜에 6억2700만달러를 투자했고 중국 택시 예약 애플리케이션업체 다처에도 6억달러의 자금을 투입했다.

소프트뱅크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는 1300여개 회사들이 포함돼 있다고 알려졌다. 소프트뱅크는 다음달 감정 인식 로봇 ‘페퍼’ 출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로봇산업 진출 계획도 밝혔다.

아로라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IT 회사뿐만 아니라 금융서비스와 의학 분야에 대한 투자도 고려하고 있다”며 “금액과 범위에 구애받지 않고 적당한 기회가 포착된다면 대담하게 투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아로라의 투자에 대해 손 사장은 “투자와 관련한 나의 말도 안되는 생각들을 공유할 만한 인물이 회사 안에는 거의 없는데 아로라는 예외”라며 “믿고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절대적인 신임을 보여줬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