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이나 금고에 숨어 있던 5만원권이 다시 돌기 시작한 것일까. 하락하던 5만원권 환수율(누적 발행액 대비 환수액)이 두 달째 올랐다. 2009년 첫 발행된 5만원권은 높은 인기 속에 지금까지 100조원 가까이 풀렸다.

하지만 거래에 쓰인 뒤 한국은행으로 환수된 것은 10장 중 네 장에 그쳐 ‘지하경제에 악용된다’는 우려가 많았다. 최근 환수액이 급증한 배경으로는 설 연휴 효과, 엄격해진 발권 정책 등이 꼽힌다.
'장롱 속 5만원권' 다시 도나…환수율 두달째 반등
○환수율 반등은 이례적

26일 한은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5만원권 환수율은 43.2%로 나타났다. 환수율은 2013년 8월 47.7%로 고점을 찍은 뒤 줄곧 내려 지난 2월 말 42.0%까지 떨어졌다. 그러던 환수율이 3월(43.1%) 이례적인 오름폭(1.1%포인트)을 기록한 뒤 두 달 연속 상승한 것이다.

환수율이란 지금까지 한은이 시중에 푼 현금(발행액) 가운데 한은으로 돌아온 금액(환수액)이 얼마나 되는지 나타낸다. 발행된 화폐는 예금으로 입금되거나, 깨끗한 것으로 교환되는 과정에서 한은 금고로 돌아온다.

2009년 6월 첫 발행된 5만원권은 지난 4월 말까지 98조9000억원어치가 발행됐다. 같은 기간 환수액은 그 절반이 안 되는 42조7000억원(43.2%)이다.

○지하경제로 숨었다더니

5만원권 환수율은 2013년부터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돌고 돌아야 할 지폐가 금고 등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은 발권국 관계자는 “고액권의 특성상 보관 용도로 쓰이기 쉽다”며 “예금 금리가 낮아 현금 보관의 불이익이 줄어든 것도 환수율 하락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외친 직후부터 환수율이 떨어진 데 주목했다. 5만원권은 수표와 달리 거래 기록이 남지 않는다. 5만원권이 뇌물로 쓰이거나 탈세 현장에서 발견되는 사례도 많았다.

최근 환수율 하락세가 주춤해진 것은 그런 면에서 눈길을 끈다. 한은 관계자는 “고액권 환수율은 발행 뒤 어느 시점부터 바닥을 찍게 된다”며 “1973년 발행 당시 최고액권이었던 1만원권도 10여년 뒤부터 환수율이 본격적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시중의 보관 수요가 일부 충족됐거나, 손상된 화폐가 많아지면 환수되는 금액이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정책 효과’ 컸다

반짝 상승에 불과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지난 3월 한 달간 5만원권 환수액은 약 1조3500억원으로 2012년10월(1조6600억원) 이후 최고였다. 설 연휴에 세뱃돈 등으로 쓰인 현금이 예금기관을 통해 대거 환수된 것으로 한은은 추정했다.

정책 효과도 컸다고 한은은 평가한다. 5만원권 환수율이 자꾸 떨어지자 한은은 올초부터 발권 정책에 변화를 줬다. 한은이 은행에 신권을 배분할 때 참고하는 ‘제조화폐 지급운용 기준’에 5만원권 환수액이 포함됐다. 5만원권을 한은에 많이 입금한 은행에 신권을 더 배분키로 한 것이다. 신권을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상 은행들도 5만원권 환수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됐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5만원권 환수율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는 데엔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 많다. 저금리 환경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지하경제가 위축될 조짐도 아직 보이지 않아서다.

한은 관계자는 “5만원권은 기존 지폐보다 튼튼하게 만들어져 유통 수명도 길다”며 “몇 년 후 손상된 5만원권이 늘어나면 환수율이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