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뺏긴다"…한목소리 낸 조선(造船) CEO들
국내 조선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앞으로는 예전 같은 고도성장기가 다시 오기 힘들다”며 “향후에는 질적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 23일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본사에서 열린 조선업계 CEO 간담회 자리에서다. 대한조선해양플랜트협회 소속 조선사 CEO들은 1년에 두 번씩 모여 조선업계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번 모임은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등 조선사 CEO들의 연쇄 교체 이후 처음 열렸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이병모 STX조선해양 사장, 하경진 현대삼호중공업 사장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주주총회 및 이사회에서 정식으로 대표이사로 임명되기 전이라는 이유로 불참했다.

◆“세계 1위 유지 힘들 수도”

CEO들은 이 자리에서 한국 조선업계가 ‘세계 1위’라는 자리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했다고 한다. 회동에 참석한 한 조선사 CEO는 “지금까지 모임은 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친목을 다지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무겁고 진지했다”며 “조선산업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면서 대화 시간도 평소보다 길어졌다”고 전했다.

조선사 CEO들이 한목소리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우려한 것은 10년 가까이 조선업계 불황이 계속되면서 시장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성동조선해양 등 중소형 조선사 일부는 자금난을 겪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 중에서도 2개사가 1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4월 세계 선박 발주량은 820만CGT(가치환산톤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8.2% 감소했다.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수주량을 늘리고 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한국을 제치고 수주 1위를 유지했다. 한국에 ‘조선 1위’ 타이틀을 내줬던 일본은 정부의 지원과 엔저(低)를 등에 업고 부활을 꿈꾸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수주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한국 조선사들이 기술력 등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유지할지 모른다”며 “조선사 CEO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계 1위 유지가 힘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한 조선사 CEO는 모임에서 “호황기가 다시 오더라도 예전 같은 고도성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기술개발을 비롯한 질적 성장을 이루지 않는다면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는 어둡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절실”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 중소형 조선사 CEO는 “조선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정부가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며 “중소형 조선사들이 자금난으로 무너지면 한국 조선산업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박 사장은 CEO들의 요구에 대해 “회원사의 애로사항을 귀 기울여 듣고, 이런 내용을 정부에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권 사장은 “조선사들이 한목소리를 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