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MLB 보며 밤새우고…불금엔 '땡땡이' 치고 원정 관람…한 주 잘 버텼다, 야구 덕분에
김 대리(34)는 사내에서 소문난 메이저리그야구(MLB) LA 다저스 팬이다. 올해는 아니었다. 류현진 선수가 부상으로 시즌 초부터 출전하지 못하다가 최근 어깨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치자 애정이 사그라든 탓이다. 다저스 경기를 보기 위해 MLB 전 경기를 인터넷으로 시청할 수 있는 MLB TV 프리미엄 시즌권을 5만원에 구입했지만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그랬던 그가 요즘 다시 ‘MLB 새벽 시청’을 시작했다. 그리 기대하지 않았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강정호 선수가 연일 맹타를 터뜨리자 사랑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때맞춰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 추신수 선수도 연일 장타를 터뜨리는 등 회복 기미가 완연하다.

스포츠 마니아 직장인에게 요즘은 행복한 시기다. 야구 팬들은 강정호, 추신수 선수가 나오는 MLB 경기는 물론 한국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국내 프로야구의 명승부에 열광하고 있다. 자전거 마니아들은 다가올 주말에 예정된 장거리 라이딩을 생각하며 힘든 직장생활을 버틴다. 스포츠는 직장인들에게 비타민과도 같다. 하지만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로 심하게 스포츠에 빠져드는 직장인도 있다. 직장 상사 몰래 회사를 ‘땡땡이’치기도 하고, 연일 밤샘 시청을 하다가 업무시간 대부분을 잠으로 때우기도 한다.

빠져나올 수 없는 직접 관람의 재미

서울 한화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대전 출신 김모씨(30)는 지난달 이후 대전에 세 차례 다녀왔다. 4월15일(수요일)에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주중 3연전 중 두번째 경기를 대전에서 ‘직관(직접 관람)’한 뒤 밤늦게 서울로 올라왔다. 17일(금)에는 다시 대전에 내려가 NC 다이노스와의 3연전 중 첫 경기를 보고 대전 부모님 집에서 하루를 보낸 뒤 돌아왔다.

현장에서 고향 친구들과 보는 한화 이글스의 경기는 ‘꿀재미(꿀처럼 달콤하게 재미있다는 뜻의 은어)’였다. 더구나 응원팀인 한화 이글스가 연일 명승부를 펼치니 재미는 더욱 커졌다. 문제는 대전에 가기 위해 직장 선배들에게 거짓말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

그는 15일(금)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처음부터 보기 위해 “친구 어머니 상가에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오후 3시께 회사를 나왔다. “금요일 오후에 상가를 간다고 하니 회사 선배들이 진짜로 믿지는 않았을 거예요. 대전 직관에 너무 빠져드는 것 같아서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화가 성적이 좋아도 문제가 생기네요.”

자전거에 1000만원 쓴 김 과장, 결혼은?

한 식품회사에 다니는 임 대리(34)는 주말이면 100㎞ 이상 자전거를 타는 자전거 애호가다. 지난 23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 반포에서 춘천까지 6시간을 달렸다. 춘천 시내 닭갈비 맛집에서 식사를 한 뒤 ITX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1주일의 피로가 싹 풀렸다.

그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은 올해로 만 3년째다. 임 대리는 그동안 자전거 장비를 구입하는 데 1000만원을 넘게 썼다. 800만원짜리 독일 자전거 브랜드 캐년, 가볍고 잘 굴러가는 130만원짜리 DT스위스 바퀴, 60만원짜리 사이클 전용 위성항법장치(GPS) 등…. 그가 지금까지 구입한 자전거 관련 주요 제품 목록이다. 아직 미혼인 그에게 동료들은 “그렇게 자전거에 빠져서 장가는 어떻게 갈 거냐”며 걱정한다. 그래도 임 대리는 당당하다. “예전에 타던 80만원짜리 자전거보다 얼마나 잘 나가는데요. 열심히 연습해서 국내 사이클 대회에도 나가보려고요.”

정 과장(40)은 필라테스에 푹 빠진 케이스다. 외국계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그는 최근 수백만원짜리 필라테스 용품을 구입해 집에 들여놨다. 필라테스 학원에서 사용하는 이 용품은 집에서 혼자 고난도 필라테스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이다. 정 과장은 올초 건강검진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한 뒤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 사이 필라테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다행히 남편은 아직 그가 구입한 필라테스 용품이 수백만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정 과장은 “3개월 무이자 할부로 계산하긴 했는데 남편한테 어떻게 얘기할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피할 수 없는 상사와의 운동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33)는 상사인 박 차장의 권유(?)로 자전거와 야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강관리에 도움이 많이 돼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쉬고 싶은 주말마다 어김없이 박 차장의 호출이 오는 것. “가볍게 한강에서 30~40㎞ 타는 거 어때?” 이렇게 시작하는 박 차장과의 라이딩은 가볍게 끝나는 법이 없다. 점심을 먹고 나면 “많이 먹었으니 한 번 더 타야지” 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박 차장의 강요로 야구용품도 샀다. 사회인 야구를 하는 그가 팀에 들어오라고 권유한 지는 오래됐다. “차가 없어 용품을 싣기가 어렵다”며 요리조리 빠져나갔지만, 최근 차를 사 거절할 명분도 사라졌다. 김 대리는 “친구들과 불타는 금요일을 보낸 뒤 1~2시간밖에 못 자고 박 차장을 만난 경우도 많다”며 “술이 안 깬 채 자전거를 달리다가 위험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야구 덕분에 안착한 직장생활

LG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손모 대리(34)는 인도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온 해외파다. 학창시절 오랜 기간을 해외에서 보내다 보니 입사 이후 회사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선후배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엘리트 사원이 됐다. 비결은 프로야구에 있었다. 입사 초만 하더라도 손 대리는 ‘인도에서 자주 봤던 크리켓과 비슷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 야구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랬던 그가 회사 VIP고객 접대를 위한 야구티켓 관리를 맡게 됐다. 업무를 위해 LG 트윈스 경기부터 보기 시작한 손 대리는 야구에 푹 빠져버렸다. 지금은 LG 트윈스 모든 선수의 스탯(성적)을 줄줄이 암기하는 야구광으로 변신했다.

“회사 동료나 외부 손님을 만날 때 야구 얘기부터 꺼내요. 그러면 상대방의 눈빛이 반짝거리면서 1시간 정도는 야구 얘기로 훌쩍 지나가죠. 야구 덕분에 제 회사생활이 폈다고 봐도 될 거 같아요.”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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