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중국 파워블로거들이 22일 서울 청담동 명품 매장에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신세계백화점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중국 파워블로거들이 22일 서울 청담동 명품 매장에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품질을 중국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인을 봉으로 여기는 태도를 접할 때는 기분이 나빠요.”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2층의 한 의류매장을 찾은 다섯 명의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신세계백화점이 요우커 마케팅 차원에서 초청한 ‘바링허우(198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의 파워 블로거들이다.

패션과 쇼핑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는 장자자 씨(34)는 “한국 패션브랜드는 일본처럼 개성 표현이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디자인이 세련돼 좋아한다”고 말했다. 중국인의 체형과 스타일에 한국 패션이 잘 어울린다는 평도 내놓았다.

가격 경쟁력에 대해서도 후한 평가가 나왔다. 남대문시장에 들른 탕샤오자 씨(35)는 화장품 가판대에서 마스크팩을 살펴보다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피부 미백과 보습에 효과가 좋은 마스크팩을 2000원 정도에 살 수 있는 곳은 한국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며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중국에서 ‘짝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번역가인 탕씨는 중국 네티즌 200만명이 찾는 여행 관련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한국의 쇼핑 환경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장씨는 “첫 번째 방문 때처럼 이번에도 직원들이 건성으로 대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요우커는 무조건 대량 구매할 것으로 생각하는 듯해 불쾌하다”고 했다.

"한국 화장품·패션 최고지만…요우커 '봉' 취급 땐 불쾌해요"
바링허우는 요즘 요우커들의 한국 쇼핑 주력부대로 떠오른 세대다. 중국의 단체관광제한법이 통과되면서 자유여행으로 한국을 찾는 젊은이가 늘고 있어서다. 신세계가 바링허우 세대를 초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쇼핑길에 동행한 홍성민 신세계백화점 대리는 “보름 전에 끝난 노동절 연휴 세일행사 때 요우커 매출이 한 해 전보다 50%가량 늘었는데, 증가분의 대부분이 20~30대 바링허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5명의 바링허우 세대 요우커는 고가 명품보다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상품을 여행가방에 우선적으로 담았다. 류멍이 씨(25)는 신세계 본점 신관 3층의 모조에스핀 매장에서 원피스를 골랐다. 모조에스핀은 중고가의 컨템퍼러리 브랜드다. 류씨는 “젊은 층은 디자인을 주로 보는데 과한 느낌이 없어 좋다”며 “한국 패션 상품은 중국인의 체형과 스타일에 잘 맞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의 문화·인종적 유사점도 언급했다. “한국 화장품의 경우 중국인 피부톤에 잘 맞습니다. 유럽보다 같은 문화권의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높은데 일본 제품은 가격이 비싼 편이지요.”

한국 상품의 품질과 다양한 포트폴리오도 호평을 받았다. 류씨는 “중국에선 면세점에서 사도 ‘짝퉁’일 수 있다는 걱정이 드는데 한국에선 그런 우려를 덜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에서는 사고 싶어도 신상품을 구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한국 매장에는 글로벌 브랜드의 신상품이 대부분 전시돼 있다”고 덧붙였다.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패션 블로그를 운영하는 류쉐 씨(31)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쇼핑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배우 전지현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사용해 유명해진 입생로랑의 립스틱을 구매했다. 류쉐 씨는 “한국 연예인을 닮고 싶어하는 중국인들이 많다”며 “‘성형 관광’이 성행하는 것도 한국인처럼 예뻐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청받아 온 자리여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쇼핑이 진행됐지만, 따끔한 충고도 빠지지 않았다. 요우커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인 MCM에서 지갑을 산 탕샤오자 씨는 과도한 ‘레드 마케팅’을 지적했다.

탕씨는 “중국인이 기본적으로 빨간색을 좋아하지만 ‘빨간 지갑은 돈이 나간다’는 속설도 있다”며 “빨간색으로 만든다고 다 잘 팔리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층 가운데는 빨간색이 지나치게 들어가면 촌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해외 명품 매장을 둘러보는 자리에서도 중국 소비자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간결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조르지오아르마니 매장을 둘러본 류쉐 씨는 “화려하고 장식이 많이 들어간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주로 졸부들”이라며 “진짜 부자들이나 젊은 세대는 오히려 단순한 디자인을 좋아한다”고 했다.

일본이 쇼핑 명소로 한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에는 5명의 바링허우가 입을 모았다. 장자자 씨는 “서비스에서 한국이 불만스러운 점이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은 언제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며 “엔저현상이 이어지면서 한국을 찾던 요우커들이 일본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했다.

쇼핑 외에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투어를 마칠 즈음 재방문 의사가 있는지 묻자 탕씨는 “경복궁 등 한국의 궁궐은 중국보다 규모가 너무 작고, 제주도는 다른 동남아시아 휴양지에 비해 매력이 덜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