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방탄복
기원전부터 가죽이나 천으로 만든 갑옷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종이를 열대여섯 겹씩 붙여 만든 갑옷이 쓰였다. 완전하진 않지만 적의 화살을 빗나가게 하는 효과는 제법 있었다. 가는 철사를 무수히 이은 사슬갑옷도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지를 겹쳐 만든 지갑(紙甲)과 면포를 여러 장 겹친 면제배갑(綿製背甲)을 많이 썼다.

병인양요 때 병사들이 입던 면제배갑이 전해오는데, 면(목화)으로 만든 천이 상당히 두껍고 뻣뻣해 보인다. 여러 겹을 덧입히면 당시의 구식 총알 정도는 막을 수 있었겠다. 현대식 방탄복의 기본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여러 겹의 섬유를 겹쳐 총알이 천의 그물망에 걸리도록 하는 방법이다. 19세기에 처음 나온 방탄조끼도 실크를 여러 장 겹쳐 만든 것이었다.

요즘 같은 방탄복은 미국 섬유기업 듀폰이 1972년 질기고 강한 케블라를 개발하면서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케블라는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약 5배 튼튼하다. 이를 개발한 여직원 스테파니 크월렉은 ‘무엇인가가 걸려들었을 때 그 진행을 막는 매우 질긴 소재’에 착안했다고 한다. 1986년 은퇴한 그는 많은 목숨을 구한 공로로 1995년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으로 유명한 방탄 소재는 네덜란드 DSM사가 1990년대에 양산한 다이니마다. 석유에서 뽑아낸 나프타 성분에서 다시 에틸렌을 정제해 만든 것이다. 이를 공장에서 고온과 3000기압의 초고압으로 압축하면 충격에 강한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얻을 수 있다. 이 소재는 케블라보다 탄성력은 좀 떨어지지만 충격 흡수 능력은 뛰어나다.

최근에는 그래핀이나 탄소나노튜브(CNT)를 활용한 첨단 방탄복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와 탄성률이 비슷해서 다른 방탄 소재보다 훨씬 강하다. 한국계 미국 과학자 이재황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교수팀이 지난해 강철보다 10배 이상 강한 그래핀 방탄복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아주 얇은 그래핀을 100만장 이상 겹쳐도 두께가 0.3㎜밖에 안 될 정도로 얇고 가벼운 게 장점이라고 한다.

최근 방위사업 비리와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방탄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소재를 갖다 붙인다 해도 ‘방패’로 ‘창’을 이기기는 어렵다. 관통력을 높인 철갑탄 등 총탄 기술은 더 빠르게 발전한다. 공자님 말씀 같지만 결국 해법은 전쟁과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화해에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