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공무원연금 ‘반쪽 개혁안’을 도출한 데 이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국민연금 재정 고갈에 대한 우려와 정치권을 향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4일 점심시간에 정부서울청사를 빠져나가는 공무원들. 연합뉴스
여야가 공무원연금 ‘반쪽 개혁안’을 도출한 데 이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국민연금 재정 고갈에 대한 우려와 정치권을 향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4일 점심시간에 정부서울청사를 빠져나가는 공무원들. 연합뉴스
국민연금 지급액을 늘려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겠다는 여야 합의는 중산층 이상 국민에게 혜택이 집중돼 저소득층과의 소득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나 실업자 등 상당수 취약계층이 아직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에게만 연금을 더 얹어주겠다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국민연금 지급액을 늘리기 위해 보험료율을 올릴 경우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가입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입 못한 사람 많은데…

[거꾸로 가는 국민연금 개혁] 국민연금 미가입자 대부분 저소득층…"연금 늘리면 소득격차 커져"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임금 근로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사업장 가입자 기준)은 68.9%다. 나머지 31.1%는 국민연금 가입을 못했다는 얘기다. 월소득 400만원 이상 근로자의 경우 96.6%가 가입했지만 100만원 미만 근로자의 가입률은 15.0%에 불과했다. 100만원대 월급을 받는 사람의 가입률은 60.7%에 그쳤다. 회사가 영세해 근로자의 연금보험료를 사실상 부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안정적인 중산층 이상은 국민연금에 많이 가입해 있지만 저소득층 중 상당수는 아직 연금 사각지대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지급률만 덜컥 올려버리면 계층 간 불형평성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연금 사각지대 문제를 그대로 놔두고 연금(지급률)만 높인다고 하면 못 받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격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꾸로 가는 국민연금 개혁] 국민연금 미가입자 대부분 저소득층…"연금 늘리면 소득격차 커져"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는 2113만여명이다. 이 중 450여만명은 실직이나 휴직, 취약한 경제적 상황 등을 이유로 ‘납부예외’ 인정을 받고 있다. 납부예외된 기간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에서 제외해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 불이익을 받는다. 특히 지역가입자들은 절반이 납부예외자다. 장기 체납자는 112만여명이다. 납부 예외자와 합치면 560여만명이 사각지대에 있다.

○진입장벽만 높아져

여야 합의대로 국민연금 지급률을 높이면 결국 보험료율도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하면서 안정적으로 기금 재정을 남겨두려면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6~18%까지 인상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 입장에선 진입장벽이 더욱 높아지는 셈이다. 4대 보험 통합 징수를 담당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저소득 근로자들은 당장 먹고살기가 힘들어 사회보험료 월 1만~2만원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며 “월 100만원을 버는 근로자에게 16만~18만원을 연금보험료로 내라고 한다면 사실상 가입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재정절감분 어디에 쓰려고

당초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던 공무원연금 재정절감분 20%는 약 67조원이다. 이 돈을 어느 곳에 쓸지를 두고도 여야 간 동상이몽이다. 여야 합의안엔 공적연금제도 개선에 활용하겠다고 돼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사각지대 해소에 쓸 것인지, 지급률 인상에 사용할 것인지, 또 다른 영역에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선 명시하지 않았다.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관계자는 “재정절감분은 실업크레디트 확대 등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쓰기로 협상 과정에서 결론이 난 것으로, 다른 곳에 끌어다 쓴다면 합의를 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재정절감분의 20%를 공적 연금 개선에 쓴다는 내용 자체도 야당이 우겨 어쩔 수 없이 넣은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사용처를 못박아놓는 것은 재정 자율성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