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상품에 투자해본 경험이 많은 투자자라면 증권사가 상품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설명했어도 투자로 본 손실을 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최근 법원이 개인 투자자 보호에 무게를 싣는 판결을 잇따라 내리고 있는 가운데 보호 범위에 한계를 긋는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LIG건설의 기업어음(CP)에 투자한 김모씨와 안모씨가 이를 판매한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내려보냈다고 3일 발표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는 CP에 대한 투자 위험 및 그 설명 의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와 안씨는 2010년 10~11월 친인척인 정모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LIG건설이 발행한 CP에 각각 2억원과 1억원을 투자했다. 정씨는 금융상품을 다루는 회사에서 30년 이상을 일했고 이 사건 투자계약 당시에도 개인적으로 금융 투자를 지속하는 등 관련 경험과 지식이 많았다. 김씨 등은 LIG건설이 주택경기 침체와 미분양 등으로 경영 악화를 겪다가 2011년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해 손해를 보자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당시 우리투자증권은 자체적으로 발행한 투자설명자료와 신용평가기관이 발행한 해당 CP에 대한 신용평가서 2부를 줬다. 투자설명자료 투자포인트란에서 각 신용평가서 내용을 인용하며 LIG그룹의 지원 가능성 등 긍정적인 요인을 강조했다. 1심과 2심은 “LIG그룹이 LIG건설을 지원할지 불확실했지만 우리투자증권은 이를 부각하는 등 일반 투자자 처지에서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투자설명을 왜곡했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자본시장법은 일반 투자자를 전문 투자자와 구분해 더 두텁게 보호하고 있는데 정씨는 일반 투자자에 해당된다. 다만 정씨가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수준이 높았던 점 등을 고려해 1심은 우리투자증권 책임을 60%로, 2심은 30%로 제한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LIG그룹의 지원 가능성은 각 신용평가서 내용에 기초한 것으로, 그 자체로 단정적 판단이 아닌 불확실한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며 “정씨의 투자 경험 및 능력을 고려할 때 그것이 투자 위험에 대한 올바른 인식 형성을 방해할 정도로 균형을 잃은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우리투자증권이 이 사건 투자계약 체결에 따르는 위험에 대해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그르치게 할 정도로 균형성을 상실한 설명을 했다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LIG건설 CP 판매와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 가운데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결로 부도 위기였던 LIG건설 CP를 판매해 투자자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던 증권사는 배상책임을 벗게 됐다. 한 변호사는 “투자 전문성이 높은 사람이 불완전 판매를 핑계로 투자 손실을 증권회사에 떠넘길 수 없다는 취지”라며 “이번 판결로 증권사들이 불완전 판매 리스크를 어느 정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기업어음(CP)

commercial paper. 기업이 주로 단기 자금조달을 위해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무담보 어음. 보통 증권사가 발행된 CP를 할인된 가격에 사들인 뒤 기관이나 개인에게 되판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