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5월 황금연휴 눈치보지 마세요
5월 황금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5월4일 하루만 연차를 쓰면 근로자의 날(1일), 주말(2~3일), 어린이날(5일)까지 닷새를 내리 쉴 수 있다. 이 정도로 긴 연휴는 매년 찾아오는 게 아니다. 연휴를 맞이하는 김 과장 이대리들의 움직임은 벌써 분주하다. 그렇지만 황금연휴가 누구에게나 다 황금 같은 것은 아니다. 김 과장은 황금연휴에 여름휴가까지 붙여 10박11일간 여행을 떠나는 반면,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이 대리는 쉬는 날이 대목인 터라 연휴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야근해야 한다. ‘팔자려니…’ 해야 할까. 김과장 이대리들의 5월 황금연휴 계획을 미리 들어봤다.

“제대로 즐긴다”는 ‘소신파’

국내 굴지의 통신회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8)은 이번 황금연휴를 손꼽아 기다려 왔다. 김 과장은 올해 초 한 미국 항공사가 벌인 할인 이벤트를 이용해 미국 왕복 티켓 6장을 총 300만원에 획득했다. 김 과장은 일단 표부터 끊어놓고 팀장과 한 달 이상 ‘협상’을 했다. “언제 이런 가격에 미국을 다녀오겠느냐” “모처럼의 가족 여행이다” “절대 업무에 지장 없도록 하겠다” 등등… 잊어버릴 때쯤 한마디씩 했다.

끈질긴 호소 끝에 그는 4월28~30일, 5월4일과 6~7일까지 총 엿새간 휴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황금연휴를 더하면 총 9박10일로 사실상 여름휴가나 다름없는 기간을 쉴 수 있다. 김 과장은 이번 연휴에 두 자녀, 부모님 등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올 예정이다. 그는 “그동안 회사에 몸 바쳐 일하느라 뒷전이었던 가족에게 이번 기회로 점수를 좀 따고 싶다”고 말했다.

대기업 3년 차인 미혼 김모 주임(30)은 이미 연휴에 들어갔다. 그는 지난 25일 유럽 여행을 떠났다. 황금연휴에 여름휴가를 붙이니 총 10박11일간을 쉰다. 회사에서 징검다리 연휴 때 연차를 적극 쓰라고 장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게 김 주임의 설명이었다. “회사의 눈치가 보이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당당했다. “요즘 애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눈치 보는 건 중간급 직원들이죠. 직원들의 권리인 휴가를 두고 뭐라고 하는 건 솔직히 이해가 안되네요.”

황금연휴에도 출근하는 ‘소심파’

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다니는 김모 과장(32)에게 황금연휴는 ‘그림의 떡’이다. 회사 규모가 직원 20여명으로 작다 보니 그가 해야 할 업무량이 많다. 맡은 업무가 펑크날까봐 월차는커녕 정기휴가도 눈치를 보고 써야 한다. 돌아오는 황금연휴에는 기업소개 자료를 만들고, 밀린 보고서를 쓸 계획이다.

국내 상위권 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김 과장에겐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 그는 “얼마 전 대학 동기들에게서 ‘5월 연휴에 맞춰 같이 해외여행을 가자’며 연락이 왔는데, 혼자만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며 “‘나중에 더 큰 열매로 돌아올 것’이라며 애써 스스로 위안한다”고 말했다.

한 유통회사 입사 4년 차인 최모 대리(32)는 수도권의 한 아울렛 매장에서 점포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그에게도 황금연휴는 ‘남의 일’이다. 연휴가 대목인 업종 특성 때문이다. 이번 연휴에도 매일 점포에 나갈 예정이다. 그는 “부인과 두 살배기 아들은 몇 년째 연휴 때 TV만 보고 있다”며 “올해도 밖에서는 손님에게, 집에서는 아내에게 시달리는 연휴가 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김모 대리(31)는 황금연휴가 다가와도 전혀 즐겁지 않다. 남들은 제대로 된 황금연휴를 즐긴다는데 사장이 먼저 “지금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데 황금연휴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한가한 사람들”이라며 휴가 사용을 원천봉쇄해버린 것. 김 대리는 황금연휴는커녕 주말에 출근하란 소리를 들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연휴기간에 출장 가는 ‘양수겸장파’

황금연휴에 출장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출판사에 다니는 강모씨(31)가 그렇다. 강씨의 바로 윗상사인 노처녀 팀장은 연휴가 되면 해외 출장을 떠난다. 혼자 한국에 있기 싫어서 연휴와 명절만 되면 꼭 해외 바이어나 필자와 미팅을 잡는다. ‘여행 겸 출장’인 것이다. 강씨는 팀장과 함께라면 그곳이 유럽이건, 미국이건 그저 근무지의 연장선일 뿐이다. 핑계를 대고 안 간 적도 있지만 후폭풍을 몇 번 경험한 이후 거절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포기하는 심정이 됐다. 그는 “처음엔 힘들었지만 요즘은 출장을 ‘회삿돈으로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며 “팀장이 결혼하면 이런 출장도 못 갈 거 같은데, 그때 가서 어떤 느낌이 들지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연휴=아이 돌보는 날’인 ‘가정파’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최모 과장(37)은 이번 연휴에도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못할 거 같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 아이가 5월1일부터 5일까지 자율방학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100일을 갓 넘긴 둘째 아이 때문에 가족들끼리 여행을 갈 수도 없다.

최 과장은 몇 주 전 외출한 아내를 대신해 두 아이를 돌본 적이 있다. 언제나 그렇듯 몇 시간 만에 녹다운됐다. 그는 “한 번은 ‘지방출장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지방에 콘도를 잡아서 하루 종일 뒹굴기나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며 “애 보다가 부인과 싸운 적도 많아서 다가오는 연휴가 두려울 뿐”이라고 털어놨다.

지난주 대학 동기의 청첩장을 받은 조모 대리(33)의 표정도 밝지만은 않다. 몇 년 만에 연락이 온 동기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모바일 청첩장을 보낸 것이다. 링크를 열어 본 조 대리는 깜짝 놀랐다. 결혼식 날짜가 하필이면 5월2일이었다. “제 결혼식에 와준 친구라 안 갈 수도 없고… 황금연휴에 가족과 서울 근교에 나들이라도 가려고 했는데, 토요일 오후에나 출발해야겠네요. 연휴에 결혼하는 거, 이거 상도덕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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