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중국 선전시 난산구에 있는 ‘3W창업카페’에서 만난 류청 씨(31). 그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작년 4월 사표를 냈다. 함께 퇴사한 직장동료 두 명과 자본금 15만위안(약 2600만원)을 모아 하오젠이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선전지역에 있는 헬스클럽에 대한 평가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다. 두 번째 투자유치 과정에서 평가된 이 회사 가치는 1750만위안(약 30억원). 류씨는 “1999년 텐센트에 입사한 선전대학 동기 10명 모두가 현재 스타트업 대표로 변신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리포트] 중국 선전은 '창업 천국'…텐센트 입사 동기 모두 스타트업 대표로
중국 광둥성 남단, 홍콩과 경계를 이루는 대도시 선전에 창업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탄탄한 제조 인프라, 몰려드는 투자금, 정부의 규제 완화 등 적극적인 창업 지원책에 힘입어 미국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글로벌 창업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2010년 36만개였던 선전의 기업 수는 지난해 86만2000개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제품 생산 가능”

지난 23일 찾은 선전의 대표적인 전자상가단지 화창베이. 초입에 있는 췬싱상가 1층에 들어서니 지오니(GiONEE), 둬웨이 등 낯선 브랜드의 스마트폰 매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산자이(山寨·모조품)’의 중심지 선전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췬싱상가에서 20m가량 떨어진 또 다른 전자상가 화창의 한 매장 점원에게 “갤럭시S6엣지 짝퉁도 있느냐”고 물어보니 “지금은 없지만 800위안(약 14만원)만 주면 A급 산자이 제품을 구해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행한 매장 점원은 “아이폰6, 갤럭시S6엣지 등을 진품과 동시에 시장에 출시할 수 있을 정도의 제조 인프라와 노하우를 갖춘 곳이 바로 선전”이라고 설명했다.

박은균 KOTRA 선전무역관장은 그러나 “요즘 선전을 알려면 각 전자상가 고층부에 밀집한 부품가게를 봐야 한다”며 “정보기술(IT) 제품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세계 어느 도시보다 빠르고 싸게 조달할 수 있어 하드웨어 쪽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선전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선전에는 시제품을 만들어주는 제조업체가 넘쳐난다. 시제품 전문 제조업체 시드스튜디오의 한즈위 홍보담당 부장은 “10개 정도의 시제품을 주문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선전밖에 없을 것”이라며 “선전에선 아이디어만 있으면 바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선전이 창업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제조 인프라 때문만은 아니다. 창업인큐베이터가 많은 것도 강점이다. 작년 10월 설립된 창업인큐베이터 촹잔구의 경우 스타트업들에 시세 대비 절반 정도의 임대료로 공간을 빌려주고 있다. 또 법률 회계 마케팅 등 각종 서비스도 제공한다. 톈원 촹잔구 이사는 “현재 선전에 500개가량의 창업인큐베이터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으로 끌고, 금융으로 밀고

중국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을 적극 장려하면서 창업 열풍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달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보고에서 ‘대중의 창업, 인민의 혁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이란 표현을 쓰면서 창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갈수록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중국 경제에 창업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뜻이었다.

선전시 정부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13년 중국 도시 중 처음으로 회사 설립에 필요한 최저자본금 제도를 폐지했고, 영업허가증 발급 절차를 간소화했다. 또 대학생들의 창업을 독려하기 위해 대학생 1인당 10만위안, 단체 창업은 최대 50만위안을 지원하고 있다.

때마침 선전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면서 최근 선전에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자금이 넘쳐나고 있다. 선전시가 창업 활성화를 위해 조성한 선전 테크놀로지파크의 경우 건물 곳곳에 ‘창업 투자’라는 이름을 내건 벤처캐피털이 입주해 있다. 중국계 벤처캐피털인 아오인자본의 삼숑 회장은 “현재 선전에는 창업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회사들이 4000개가량 된다”며 “중국 전체 벤처캐피털의 30% 정도가 선전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창업 중심지 꿈꾸는 선전

작년 3월10일 미국 뉴욕의 중심지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있는 대형 전광판에는 ‘선전과 함께 제조를(Make With Shenzhen)’이란 광고 문구가 등장했다. 오는 6월18일부터 선전에서 열리는 ‘선전 국제창업주간’을 홍보하는 광고였다. 선전시 정부가 이 행사를 열기로 한 것은 선전을 세계적인 창업 중심지로 키우기 위해서다.

이미 선전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창업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촹잔구가 마련한 공간에는 말레이시아계 웨어러블 기기 생산업체 딩딩, 홍콩계 의료기기 생산업체 ITM 등이 입주해 있다. 선전에 있는 프랑스계 스타트업 프린트(Prynt)는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프린터 겸용 스마트폰 케이스를 선보인 지 1주일 만에 60만달러의 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선전지역 5대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촹둥팡의 왕루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선전은 중국 첫 경제특구라는 역사적 배경 때문에 중국 내 어느 도시보다도 외국인에게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라며 “기술력이 있고 비즈니스 모델만 좋으면 외국계 스타트업도 각종 창업 지원 제도의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선전=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