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부터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남농 허건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한 ‘남해다도일우’.
오는 29일부터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남농 허건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한 ‘남해다도일우’.
남도 예맥의 거장 소치 허련(1808~1893)은 남종화를 한국적인 화풍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1856년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뜨자 고향 진도로 내려가 화실 ‘운림각’을 짓고 화업에 전념했다. 소치가 말년을 보낸 운림각은 아들 미산 허형(1862~1938), 손자 남농 허건(1908~1987), 의재 허백련(1891~1977), 임전 허문(1941~현재) 등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화맥(畵脈)을 형성한 ‘살아 있는 미술관’으로 불린다.

1982년 남농은 사재를 털어 운림각을 ‘운림산방’으로 개축해 국가에 기증했다. 2011년 8월 국가지정 명승 제80호로 지정됐다. 최근에는 정치권 일각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남도의 큰 화맥을 이룬 운림산방은 ‘빗자루 몽둥이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는 남농이 사생을 바탕으로 한 실경을 화폭에 담아 ‘남농 산수’라는 독자적인 산수화 경지를 구축한 무대다.

남농 산수뿐만 아니라 국내 화단에서 차지하는 운림산방 화맥의 역사적 성격과 미래까지 가늠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남농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펼쳐지는 ‘그래도 남농이다’ 전이다. 남농이 운림산방에서 작업한 전성기 주요 작품 70여점이 소개된다. 1930~1950년 무명 시절 그린 산수화부터 1960~1970년대 대담한 운필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남종화풍을 개척한 작품까지 남농의 색다른 운필이 관람객의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운림산방
운림산방
운림산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진도 앞바다 섬들을 생생하게 잡아낸 ‘남해다도일우(南海多島一隅)’, 3m가 훌쩍 넘는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등 대작은 맑고 섬세한 담채의 운치, 자신감 넘치면서도 개성 있는 화면 구성을 통해 남농 특유의 산수기법을 보여준다. 1972년에 그린 ‘추효군도(秋曉群島)’는 추색이 내려앉은 섬의 산과 나무, 밭을 그린 작품. 아름다운 남도의 풍경이 남농의 붓에 되살아났다.

‘삼송도(三松圖)’로 대표되는 남농의 소나무 그림도 여러 점 걸린다. 1970년대에 시작한 소나무 그림은 서울에서도 널리 유통돼 화가로서의 외길보다는 각계 인사와 널리 교우하고 수석 수집 취미 등을 기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푸른 소나무의 웅장한 기상을 표현한 대표작 ‘청엽생생 철석심(靑葉生生 鐵石心)’ ‘익수장년(益壽長年)’ 등이 눈길을 끈다.

‘해상설제(海上雪霽)’ ‘강산화려도(江山華麗圖)’ ‘고림유심(古林幽深)’은 소치나 미산의 영향이 강한 정형 산수를 그리던 남농이 점차 실경 정신에 입각해 속도감 있는 갈필(渴筆)과 점묘법으로 특유의 신(新)남종화풍을 발전시킨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정준 세종화랑 대표는 “남농의 예술혼을 한눈에 집약할 수 있는 대표작을 모으기 위해 10여년을 준비했다”며 “남농의 예술 세계를 한국 미술이라는 지평에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722-221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