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 씨의 ‘데칼코마니 3’.
강민정 씨의 ‘데칼코마니 3’.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1885~1930)는 생전에 ‘포르노물에 재능을 낭비한 멍청이’란 비난과 ‘상상력 넘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란 상찬을 동시에 안았다. 도발적인 필체로 오랜 세월 검열과 갖은 핍박을 감내하며 작품 활동을 한 그는 ‘예술은 교리가 없는 종교’라는 특유의 문학론을 펼치기도 했다.

로런스의 문학적인 예술관을 회화의 세계로 펼쳐 보이는 젊은 작가가 있다. 27일부터 내달 7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추상화가 강민정 씨(33)다. 강씨는 영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로런스와 야요이 구사마의 삶에 반해 미술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로런스의 문학세계에 감동받았던 그는 처음부터 예쁜 구상화보다는 추상화를 그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의 본능에 의지해 문학적 감성을 화면에 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는 문학적 영감을 밖으로 분출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제 그림은 문학적 소양의 결과물인 동시에 분출물입니다. 감성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첨예한 순간들을 잡아내기 때문에 지성의 사색이라고 생각해요.”

강씨는 슈베르트와 쇼팽의 음악을 바탕으로 화면에 색채로 이야기 구조를 엮어냈다. 일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의 경지에서 화면에 삶의 이야기를 빚어낸다. “문학적 영감을 얻어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스토리를 화면에 담아냈더니 화단에서는 제 작품을 보고 ‘스토리텔링 회화’라고 부르더군요.”

그의 대표작은 절제된 색채와 대비되는 필선으로 바람에 휘날리는 자연의 역동적인 모습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강렬한 필선과 색면의 움직임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꾀하면서 ‘추상화의 힘’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인간 내면에 역점을 두면서 검은 필체로 풍경을 아울렀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오방색으로 화면을 응축하고 있는데 이것이 예술에는 교리가 없다는 로런스의 명제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싱가포르 뱅크 아트페어에 참가해 주목받았던 강씨는 올 하반기에는 미국 유럽 등에서 열리는 다양한 아트페어에 참가할 예정이다. ‘바람과 일루전’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색면추상화 30여점을 내놓았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