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소유권이 없는 한 사기단이 2011년 2월부터 2년5개월간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땅을 팔았던 비닐하우스촌 일대.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토지 소유권이 없는 한 사기단이 2011년 2월부터 2년5개월간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땅을 팔았던 비닐하우스촌 일대.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5000만원만 투자하면 최소 1억3200만원을 벌 수 있습니다.” 지난해 5월 경기 광주 시내의 한 강의장. 유모씨(52) 등은 수십명의 노인과 주부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경기 광주·이천 일대에서 수목장(화장한 유골을 나무 근처에 묻는 장례) 부지를 분양한다며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투자자들을 데려가 광주시 인근 야산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52명이 17억원을 투자했지만 유씨 등은 수목장 분양을 위해 필요한 재단법인 설립도 하지 않았다. 보여줬던 공사는 무허가로 수목장을 조성하려다 들통 나 시청 지시로 원상복구하는 모습이었다. 사건을 수사한 염태진 강동경찰서 팀장은 “범인들은 ‘회사 운영비로 탕진했다’며 투자받은 돈의 반환도 거부하고 있어 노후자금을 털어 투자한 노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부동산 사기는 이처럼 소유권이 없는 땅을 팔거나 투자가치가 떨어지는 임야와 절대농지 등을 싸게 매수해 부동산가치를 부풀려 비싸게 파는 사기 수법을 말한다. 1970년대 서울 강남 개발로 땅을 갖고 있던 지주들이 벼락부자가 된 이후 비슷한 꿈을 좇는 투자자들을 현혹하는 사기가 40년 가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기획부동산 수법도 진화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찰팀 리포트] 구청 공무원도 당했다…더 교묘해진 기획부동산
점점 진화하는 수법

역사가 오래된 사기형태다 보니 기획부동산은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먼저 사무실을 차려 놓고 영업직원을 뽑는다. 직원들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일반인들에게 특정 지역의 토지 투자를 권유한다. 일반인은 실체나 개발정보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지방 지역 토지가 많다. 때로는 현장까지 데려가 땅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때는 투자 권유 토지 주변의 다른 땅을 보여줘 투자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2000년대 이후 이 같은 기획부동산 사기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횡행하고 있는 기획부동산 사기 수법은 △다단계 판매 △펀드식 투자자 모집 △지분이전등기 방식 △미등기전매·무단처분 △도시형 기획부동산 등으로 구분된다. ‘다단계 판매’는 부동산 업자가 직원들을 고용, 이들이 다른 사람을 소개하면 별도의 성과급을 주는 형태다. 법무법인 혜안의 최원기 변호사는 “최근엔 기획부동산 직원들이 ‘나도 이미 땅을 샀으니 안심하고 사도 된다’며 지인들을 끌어들이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펀드식 투자자 모집’은 특정 부동산에 공동 투자하면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준다고 속여 투자금을 유치한 뒤 잠적하는 사례다. ‘지분이전등기 방식’은 실제 토지를 매도하기는 하지만 공유지분 형태로 넘겨주기 때문에 실제 매수자가 판매나 소유권 행사를 하기 어려운 경우다. 경찰 관계자는 “기획부동산 측이 가짜 가분할도를 만들고 나중에 분할할 수 있는 것처럼 속여 토지를 판매하기도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미등기전매·무단처분’은 매매계약만 체결한 상태에서 토지를 팔아넘기거나, 소유주로부터 사용 승낙이나 임대만 받은 부동산을 투자자에게 파는 것이다. ‘도시형 기획부동산’은 2~3년에 걸쳐 도심지역의 연립·다세대주택 등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실수요자인 개발업자나 개인에게 웃돈을 받고 판매하는 것이다.

개발호재 지역 투자 유의해야

피해를 예방하는 좋은 방법은 특정 개발사업과 맞물려 땅값이 급등하는 지역의 투자를 조심하라는 게 경찰의 조언이다.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강원 평창군이나 레고랜드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인 춘천시 일대에서 기획부동산으로 추정되는 업체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대치동에 기획부동산 사무실을 차린 뒤 “올림픽 빙상경기가 강릉에서 열리면 옥계면 임야의 땅값이 10배 이상 오를 것”이라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금을 가로챈 일당이 지난해 말 검거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평창군 인근 임야에는 중국인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외국인 대상 기획부동산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평창군에 있는 명문공인 관계자는 “대규모 임야 분양의 경우 이미 한국인들은 사기업체가 많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기획부동산업체들이 중국인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 사기 안 당하려면…
파는 사람 의심 들면 관공서 전화해 확인을

최근 기획부동산 사기를 당한 한 피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남들이 땅과 관련된 사기로 거액을 날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까’하고 비웃었다”며 “막상 서울 강남의 고급스런 사무실과 말쑥한 옷차림의 상담직원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가슴을 쳤다.

토지를 사려는 사람들은 사기 피해를 당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예방하기 위해 몇 가지 확인절차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은 해당 토지·개발계획·업체 정보 등이다. 민원24 홈페이지(www.minwon.go.kr)에서 토지대장을 확인해 공시지가를 보고, 대법원 인터넷등기소(www.iros.go.kr)에서는 등기부등본을 통해 소유관계와 실거래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토지 구입 의사가 있다면 토지의 위치와 상태, 주변상황과 교통사정 등을 본인이 직접 살펴야 한다. 특히 주변이 개인소유 도로거나 산길은 건축행위가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 법무법인 혜안의 최원기 변호사는 “사고자 하는 땅과 중심도로 사이에 타인의 토지가 있는 경우 자신의 토지 개발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 변호사는 “이런저런 방법을 써도 의심될 때는 해당 개발지가 있는 지자체 관공서에 무조건 전화해보라”며 “관청 담당 직원의 확인만 충실히 해도 어이없는 땅을 살 염려는 없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