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성완종 게이트'의 교훈
결국 이완구 총리가 물러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예상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정으로 ‘성완종 게이트’로까지 명명된 이번 사태가 종결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번 열린 판도라의 상자는 쉽게 닫히지 않는다. 4·29 재·보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사의 표명을 앞당긴 흔적도 엿보이지만 그 정도로 봉합될 문제가 아니다.

성완종 게이트는 무엇보다도 정치라고 불리는 네트워크 게임의 내막을 실감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그 와중에 이완구 총리는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나름 역설적인 공헌을 한 셈이다. 첫째, 경위야 어떻든 권력의 비리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너덜너덜해지고 엉터리 같고 아수라장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거악이 드러나 철퇴를 맞기만 한다면 시간이 걸리고 좀 갈지자로 가더라도 결국 나라는 제대로 돌아간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그는 정권 최고위층 인사들이 연루된 정경유착을 얕은수 거짓말로 막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보여줬다. 그래도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일국의 총리인데 금방 허위로 드러날 거짓을 자신있는 말투로 반복하는 행태를 보고 실망하기에 앞서 자존심이 상했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둘째, 국회 인사청문 제도의 한계를 드러내는 데 일조했다는 점이다. 이완구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을 가까스로 통과해 살아남았다. 그 결과 인사청문의 기대 수준을 크게 낮추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번에 불거진 이 총리를 둘러싼 의혹은 국회 청문 당시에는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거짓말, 말바꾸기 같은 행태는 충분히 드러났지만 고 성완종 전 회장이 분노한 바와 같은 비리와 그것을 덮으려고 치졸한 시도를 벌인 그의 자질은 꼭꼭 감춰져 있었던 탓인지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

셋째, 무엇보다도 기획사정의 위험성을 크게 부각시켰다는 공이 크다. 기획사정은 역대정권이 임기 후반으로 가는 길을 트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왔던 정국 반전의 도구였다. 늘 표적사정이니 사전각본이니 공정성 시비가 일었지만, 이번에는 좀 심했다. 사정대상 1호가 돼야 할 사람이 사정을 진두지휘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어디서 많이 듣던 막장드라마 대사 같은 말을 믿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그 말이 사실이 됐다.

기획사정에 대한 사전 위험평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 과정에서 다시 대통령과 측근, 각료들 사이의 소통이 문제로 떠오른다. 검찰총장도 몰랐다는 청와대발 사정드라이브의 총대를 멘 국무총리의 몰락,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표적을 물색하다 결국 벌집을 건드리고 만 권부의 아둔함은 물론 두고두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가장 명심해야 할 교훈은 사정은 드라이브를 걸어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를 추모한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유대나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부패척결을 위한 서슬 퍼런 의지와 일관성, 성공 때문이다. 부패척결의 엄정함 못지않게 공직부패가 발딛지 못하도록 공무원 처우개선 등 청렴여건을 조성한 실용주의 또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약화돼 국제사회로부터 힐난을 받은 반(反)부패기구, 인권기구의 독립성과 기능을 강화하고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는 것이야말로 절실한 비정상의 정상화일 것이다.

특별검사 호출을 둘러싸고 여야가 공방을 바꾼 광경은 희한하고 신기하기라도 하지만 앞으로 또 어떤 충격적 진실에 맞닥뜨리게 될지, 정말 평안한 저녁을 가지기는 어려운지 한숨이 나온다. 권력 주변에 음침한 웅덩이들을 드러낸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기획사정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것은 어쩌면 교훈 축에 끼지도 못할지 모른다. 부패 척결은 엄중한 결단과 의지를 가지고 상시 밀고 나가야지 무슨 캠페인하듯 깃발 휘날리며 할 일은 아니라는 교훈을 되새겼으면 한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