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년 금남의 벽' 깨는 이화여대의 실험
“모든 CEO에 문 여는 최고위과정
이대, 네트워크 허브로”


대학경영 아이디어 얻기 위해
보름에 한번 성공한 기업 방문

마곡지구에 제2부속병원 건설
외국인환자 유치·장기이식 분야 진출

첨단자동차로봇공학과 만들고
신산업융합대학 내년 신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얼굴)은 ‘이화의 길’을 강조한다. 다른 여대에서 남녀공학 전환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여대 위기론’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지만 지난해 8월 ‘혁신 이화’ 슬로건을 내걸고 취임한 최 총장의 해법은 다르다. “여대에 지혜가 있다”는 지론대로 여대에서 기회를 찾는다. 정통 여대인 이화여대의 색깔을 공고히 하면서 의대와 공대 등 이공계를 대대적으로 육성하고 나선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화여대는 ‘미래 상징’인 제2병원을 2018년 개관 목표로 서울 마곡지구에 짓고 있다. 또 공대에 공학과 인문·사회·예술을 융합하는 첨단자동차로봇공학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의 업무공간을 본떠 대학본부 사무공간도 확 바꾼다.

그렇다고 남녀 간 통합이 가능한 분야의 개방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교환학생 등으로 제한돼 있던 남성 수강 프로그램을 남성 경영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화여대는 남성 경영자도 수강할 수 있는 최고위과정을 조만간 개설한다. 여대의 장점인 감성경영을 남성경영자에게 전수하겠다는 것이다. 129년 역사에서 남성 경영자가 참가하는 경영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도약을 위한 또 다른 실험이다.

'129년 금남의 벽' 깨는 이화여대의 실험
최 총장은 20일 기자와 만나 “남성 경영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최고위 과정을 신설하겠다”며 “이화여대가 네트워크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0년 개설한 최고위 경영 교육 프로그램인 ‘이화여성경영자과정’은 지금까지 교육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고 있다.

1886년 이화여대 개교 후 최초의 이공계 출신이자 1980년 이후 최연소 총장인 최 총장은 “학교 역사가 길수록 안정성에 안주하기 쉽지만 끝없는 혁신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최 총장은 올해 초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IT회사를 찾아 최첨단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회사 곳곳을 둘러봤다.

이화여대 본관에 있는 교무처 등 5개 대학행정기관의 파티션(칸막이)을 6월부터 없애기로 한 구상은 여기서 나왔다. 그는 “칸막이 없는 공간에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일하는 것에 힌트를 얻어 대학 행정에도 적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최 총장은 취임 후 최소 보름에 한 번은 성공한 기업을 방문한다. 대기업부터 중소·벤처기업까지 가리지 않고 기업인을 만난다. 이들과 네트워크를 강화해 협력할 접점을 넓히고 대학 경영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최 총장이 가장 싫어하는 이대에 대한 편견이 두 가지 있다. “여대라 네트워크가 약하다”는 것과 “인문·사회계열 중심이라 이공계가 약하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8개월간 그의 활동도 이 같은 오해를 해소하고, 해당 분야가 오히려 이대의 강점임을 보여주기 위한 방안 마련에 집중됐다. 거침없는 일정에 지난해 말에는 과로로 사흘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의대·공대 강화하는 이대

7000억원을 들여 서울 마곡지구에 짓는 이대 제2부속병원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8월 병원 건물 기공에 앞서 병원 경영계획을 세우는 한편, 의과대학과 연계한 의학융합연구 활성화를 위한 방안도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지금까지 큰 윤곽이 잡힌 안에 따르면 기존 목동병원이 여성·소아·노인 등 이대가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에 집중한다면 마곡병원은 외국인 환자 유치와 장기 이식 등 새로운 영역에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김포공항 등을 통한 외국인들의 접근성이 서울 시내 다른 대형 병원보다 높은 마곡의 입지요건을 최대한 살리는 전략이다.

최 총장은 “지난해 말 입시에서 의예과를 11년 만에 부활시키면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곡병원에서 밟을 ‘마곡 1세대’도 입학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 의대에 합격했다 등록을 포기한 5명 중 4명이 이대 의대를 선택하는 등 이대 마곡병원은 이미 대학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첨단자동차로봇공학과’ 개설 추진은 공대 강화와 맥을 같이한다. 최 총장은 “전자공학과 컴퓨터, 디자인 등이 융합된 공학학과 개설을 위해 공대 학장 등 관계자들과 논의하고 있다”며 “전체의 8%인 공대 학생 비중도 더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신설한 화학신소재공학과가 첫 입시에서 수시 30 대 1, 정시 5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흥행에 성공한 것도 고무적이다. 최 총장은 “이대에 공대가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일부 있는데 이대 공대는 1996년 세계 최초의 여성 공대로 설립돼 국내외에서 여성 공학도 교육의 모델이 되고 있다”며 “지난해 다국적 화학회사 솔베이와 이대가 합동연구센터를 개설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20만 동문 네트워크 강화

'129년 금남의 벽' 깨는 이화여대의 실험
평소 재학생들에게 “네트워크는 이대만 믿고 따라오라”고 말하는 최 총장은 취임 이후 동문 인맥 다지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 울산 광주 등 국내 동창회 모임은 물론 지난해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올해 3월 홍콩, 4월 싱가포르 등 해외 출장이 있을 때마다 해당 지역 동문회를 방문해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그는 “동문들과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마다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신다”고 했다.

내년 신설되는 ‘신산업융합대학’의 키워드도 네트워크다. 식품영양학과 국제사무학과 보건관리학과 등 기존 6개 학과를 옮겨 오고 융합콘텐츠학과를 새로 만들어 7개 학과로 이뤄지는 단과대다. 최 총장은 “식품영양학은 외식산업, 국제사무학은 MICE(기업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 산업 등과 연계하는 등 산학 네트워크가 활발히 이뤄지는 단과대로 성장시킬 것”이라며 “2020년 2월 해당 단과대를 졸업하는 학생들의 취업률이 85%를 넘기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최 총장은 구성원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11월 이대 개교 이후 처음으로 비전선포식을 열고 “2020년까지 이대를 세계 100위권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공유했다. 최 총장은 작년 8월부터 올 3월까지 교수, 교직원, 학생들과 다섯 차례에 걸쳐 간담회를 했다. 이 같은 전방위 소통은 이례적이다.

최 총장은 ‘여대 위기론’에 대해 “한국의 여성 최고경영자(CEO) 수와 남녀평등지수 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매우 낮다는 점도 여성에 특화된 교육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