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2 벤처붐, M&A 생태계 뒷받침돼야
‘창조경제’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느끼는 벤처 창업 분위기는 2000년 제1차 벤처 붐과 견줄 만하다. 한국의 성장과 고용문제 해결의 대안인 제2 벤처 붐의 조건을 재정리해 볼 필요가 충분해 보인다.

2000년 한국이 이룩한 세계 최고의 벤처 생태계는 코스닥, 벤처기업특별법, 주식옵션, 기술거래소 등 맞춤형으로 구현돼 있었다. 그러나 소위 벤처 건전화 정책에 의해 벤처 생태계는 붕괴하고 10년간의 벤처 빙하기가 도래했다. 필자는 10년 벤처 빙하기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한국의 3만 벤처와 졸업벤처들의 매출이 350조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100조원을 넘는다고 보고 있다. 이제 정부가 창조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벤처 붐을 부활시키는 노력을 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부터 창조경제연구회 등이 제기한 창조경제 과제들이 다수 국가정책에 반영되면서 벤처 분위기는 일신하기 시작했다. 창업자 연대보증 면제, 코스닥 분리, 공인인증서 폐지, 벤처 인증제 개선, 특허제도 혁신, 기술사업화 평가제 혁신, 기업가 정신 교육 등 많은 부분에서 제도 개혁을 이룩한 국가 차원의 노력은 분명히 평가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과제들이 많다. 많은 제도가 부분적 개혁에 그쳐 미진함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창업자 연대보증 면제 확산을 위한 예산은 너무 적다. 벤처인증제는 원래의 연구개발 중심 제도로 완전 복귀해야 한다. 코스닥은 완전 분리로 가야 하고, 공인인증서는 비(非)금융영역 전반으로 확산돼야 한다. 주식옵션, 기업가 정신 교육 의무화, 특허 재판, 기술평가는 이제 시작 단계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법안과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한 기술거래소의 부활이다. 요즘 고조된 창업 분위기가 진정한 글로벌 벤처 창업으로 연결돼 국가의 성장과 고용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투자와 회수의 자금 생태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투자 활성화를 위한 대안이 크라우드 펀딩이고, 회수를 위한 대안이 M&A 활성화다. 그런데 크라우드 펀딩은 법안이 제출된 지 2년이 되도록 국회에 묶여 있다. 한국보다 늦었던 일본도 입법화를 마친 상태다. 더구나 마이크로 엔젤 육성이라는 본원적 목적과는 달리 규제 패러다임으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M&A 활성화는 부분적인 개선안은 수차례 발표되고 있으나 성과는 미미하다. 부분적 지원 정책으로는 M&A 활성화가 요원해 보인다. 핵심 문제인 시장 플랫폼 구축이 정책안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기술벤처를 대기업이 인수하는 M&A는 벤처 혁신과 대기업 효율의 연결고리다. 미국 창업투자의 90% 내외는 나스닥이 아니라 M&A에서 자금을 조기에 회수하고 있다. 한국 벤처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빠진 연결 고리(missing link)’는 바로 ‘스핀오프(spin-off·특정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원이 연구결과를 갖고 창업하는 것)’와 M&A라는 개방혁신 사이클이다.

스핀오프를 통해 사내 기업가들이 혁신적 창업을 하고,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이 창조경제의 본원적 모습이다. M&A로 벤처는 시장을, 대기업은 혁신을 얻고 투자가들은 자금을 회수한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외에는 자연적 M&A시장 형성에 성공한 국가가 없다. 그래서 M&A를 포함한 혁신시장 플랫폼 구축이 한국의 전략이 돼야 한다. 진정한 창조경제 구현은 직접지원 제도가 아니라 크라우드 펀딩과 M&A 플랫폼 같은 생태계 구축으로 이뤄질 것이다.

이민화 < KAIST 초빙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mhleesr@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