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CEO가 자리 비워도 잘 돌아가는 시스템 만들었죠"
지난해 3년 만에 흑자 전환한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프로듀서(43·사진)가 겹경사를 맞았다. 소속 걸그룹 미쓰에이의 신곡 ‘다른 남자 말고 너’가 지난달 30일부터 1주간 음원차트 정상에 오른 데 이어 박 대표의 신곡 ‘어머님이 누구니’가 8일 연속 차트를 석권했다. 소속가수 2PM은 지난 15일 일본에서 정규 4집 앨범 ‘2PM OF 2PM’을 발매해 오리콘 일간차트 1위에 올랐다. 20일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제가 부른 노래가 주간차트 1위에 오른 건 8년 만이에요. 미쓰에이 곡이 저 때문에 2위로 내려앉았다는군요. 요즘 1주간 차트 정상을 지키는 곡이 거의 없어서 제 곡을 바로 뒤에 발표했는데 미안해서 오늘 미쓰에이에게 밥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의 신곡은 허리가 가늘고 엉덩이가 큰 여자를 찬양하는 내용. ‘넌 허리가 몇이니? 24요. 힙은? 34요./…/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눈을 떼질 못하잖니/어머님이 누구니/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야한 노래를 부를 때 반응이 좋아요. 하지만 이 곡을 쓸 때 퇴폐적인 느낌은 없었어요. 듣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그는 그러나 이처럼 흥행성 있는 곡만을 쓸 수는 없다며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쓴 뒤 흥행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음악으로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음악이 제 인생의 기록으로 남기를 바라거든요. 저는 예순에도 최고의 춤꾼으로 남고 싶어요. 철저한 훈련으로 살아갈 겁니다.”

JYP는 지난해 매출 485억원, 순익 78억원으로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미국 진출 실패로 진 빚도 모두 청산했다. 비결은 무엇일까.

“제가 혼자 결정하던 걸 다자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바꿨어요. 그랬더니 시행착오가 줄었습니다. 지난 3년간 대량생산 체제로 곡을 만들어왔는데 제가 원하는 시스템이 정착되려면 3년은 더 걸릴 겁니다. (창의적 활동인) 크리에이티브와 시스템은 서로 맞지 않지만 그걸 해낸 회사들이 있어요. 워너, 소니, BMG, 유니버설 등 4대 메이저가 그들이죠.”

그는 증시에 상장한 국내 음악사들이 시가총액 1조원에서 한계를 보이는 것은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스티브 잡스가 죽은 뒤 주가가 반토막 나는 것을 보고 시스템 구축을 결심했다고 한다.

“제가 곡을 덜 쓰고 내부와 외부 작곡가들을 길러내 곡을 쓰도록 하는 겁니다. 내부에서 30명 이상의 작곡가를 키우고 있습니다. 외부에도 프로젝트를 의뢰하고 있고요. 지금까지와 달리 해외 작곡가들도 좋은 곡을 주기 시작했어요. 이번에 발표한 저의 신곡도 신참들과 작업한 겁니다. 1~2년 후에는 이들이 제게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칠 겁니다.”

그는 ‘스튜디오 J’란 독립 레이블(음악 브랜드)도 만들었다. 그간 두 차례 레이블을 만들었다가 실패한 뒤 세 번째 도전이다. 음악과 사업 감각을 지닌 문호윤 스튜디오J 대표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고 한다.

“아이돌 대신 뮤지션 위주로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처음부터 아이돌 음악을 하면 팬덤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거든요. 여러 레이블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대량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4대 메이저는 이런 구조예요.”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크리에이티브를 시스템화한 메이저들의 조직구조를 배웠다. 이제 그것을 한국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궁극적으로는 제가 회사에 없어도 되면 좋겠습니다. 빌 게이츠가 시도했던 CCO(Chief Creative Officer)를 맡고 싶어요. 재미있는 발상을 하는 경영자 말이죠.”

JYP가 매출 규모에서 FNC와 씨제스 등에 추월당해 음악사 ‘빅3’에서 밀려난 것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2020년을 목표로 두고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20위가 돼도 상관없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올바르고 성실하게 가느냐를 늘 점검하고 있습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